법원 고위직 출세의 상징이던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전용차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고위 법관들은 법원으로 출근하면 잘 움직이지 않을뿐더러 지난 3월 5일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고법 부장판사 제도 자체가 사라진 데 대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법원 내에선 ‘법관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품격은 보장돼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나와 관심이 쏠린다.
사법행정 자문회의는 지난 9일 제5차 회의를 열고 재판업무만 담당하는 고법 부장판사들에게 전용차량을 배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전용차량 배정기준을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다수 의견이 있었다”며 “시행시기와 보완조치 등은 5월에 열리는 다음 회의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딸린 전용차’는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에게 주어지는 대표적인 혜택이다. 1982년 2월 ‘법관 관용차량 관리규칙’이 만들어진 뒤 38년간 이어져왔다. 임차 형태로 운영되는 전용차량에는 매년 1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재판업무를 맡느라 사실상 법원 밖으로 이동이 적은 고위 법관들에겐 전용차량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10일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개인적으로 집이 가깝기도 하고 출근한 뒤 차를 쓸 일이 없어 주차장에 세워둘 때가 많다”며 “가끔 점심 먹으러 나갈 때 사용한다”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도 “과거 전용차량 기사들은 부장판사들이 출근하고 나면 할 일이 없어 차는 세워두고 하루종일 찜질방에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며 “오죽하면 운전기사 중에 가장 편한 기사가 고등 부장판사 운전기사라는 말이 나오겠냐”고 말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그간 고법 부장판사 차량 폐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법원은 전용차량을 폐지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법관에 대해 어떤 예우를 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실제로 법원 내에서도 차량을 그대로 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법관들이 있다. 서울고법의 또다른 부장판사는 “이번에 법원조직법이 개정됐다 하더라도 기존에 임명받은 사람은 종전규정에 따른다고 돼있다”며 “기존의 혜택을 한번에 빼버리는게 입법취지에 맞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연방 헌법에서는 재직 중인 판사의 봉급을 깎으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며 “특권이다 출세다 등의 얘기를 떠나서 사법부가 입법부나 행정부에 휘둘리지 않게 최소한의 품격은 지켜야 한다는 뜻에서 생긴 규정인데 이번 결정엔 개인적으로 의문을 품는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