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한국 사회를 강타한 ‘코로나 쇼크’ 속에서도 계절의 바뀜은 어김없다. 절기상으로는 어느새 곡우(穀雨·4월 19일)를 앞두고 있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본격적인 농사철을 맞아 농부들의 일손이 빨라지는 계절이다. 이 무렵을 대표하는 정겨운 우리말을 꼽으면 ‘아지랑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자말로는 ‘야마(野馬)’라고도 하는데, 이런 말로는 말맛을 살리기 어렵다.
‘아지랑이/아지랭이/아즈랑이’ 혼용하던 말
‘아지랑이’는 한자어가 많은 우리말에서 토박이말 세력이 한자어를 압도하고 있는, 아름답고 감칠맛 나는 순우리말이다. 이 말이 지금의 ‘아지랑이’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허리띠 매는 시악시 마음실같이/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 섬세하고 영롱한 단어로 한국의 서정을 노래한 시인 김영랑이 1930년 발표한 ‘사행시’ 가운데 하나다. ‘아지랭이’가 눈에 띈다. 당시에는 똑같은 말이 ‘아지랑이/아지랭이/아즈랑이’ 등 여러 형태로 쓰였다. 이것이 ‘아지랑이’로 통일된 것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가 1936년 발표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였다.
당시 표준어를 정할 때 마지막까지 경합한 말은 ‘아즈랑이’였다. ‘아지랑이’는 어원적으로 ‘아즐하다(어즐하다: 어찔하다의 옛말)’에서 생겨난 말이라 역사적으로 ‘아즈랑이’도 많이 쓰였다(아즐+앙이→아즈랑이→아지랑이. ‘-앙이’는 친애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배추꼬랑이’라고 할 때의 ‘-앙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지랑이의 어원적 의미는 땅 위로 김이 ‘어지럽게 피어오르는 것’을 말한다(백문식, <우리말 어원사전>).
‘아지랑이→아지랭이’ 거쳐 다시 ‘아지랑이’로
일제강점기하에서 우리말을 지키고 키워가기 위해선 대표성 있는 ‘강력한 표준어’가 절실했다. 의미가 똑같은 말이 여러 형태로 쓰일 때 표준어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게 된 배경이다. 이런 원칙 아래에서 아지랑이(아즈랑이 ×)를 비롯해 넌지시(넌즈시 ×), 마침내(마츰내 ×), 질펀하다(즐펀하다 ×), 아직(아즉 ×), 아침(아츰/아참 ×) 등이 표준어로 결정됐다. 모음 ‘으’와 ‘이’가 혼용될 때 ‘이’모음 단어를 취한 것이다.
‘아지랑이’도 이때 일찌감치 표준어로 선택돼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1957년 발간된 <큰사전>(한글학회 간)에서 ‘아지랭이’가 표제어로 올라오고 ‘아지랑이’는 사라졌다. 당시 한글학회에서 ‘아지랑이’보다 ‘아지랭이’를 언중이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보고 처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찌됐건 <큰사전>의 발간은 일제강점기 때 엄혹한 우리말 탄압을 이겨내고 나온 최초의 국어 대사전이었기에 우리 국어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런 까닭인지는 몰라도 이후 사전들에는 ‘아지랭이’가 표준어로 제시되고 급기야 국어교과서에까지 오르게 됐다.
이런 과정을 표준어 규정(제9항) 해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지랑이’는 과거의 대사전들에서 ‘아지랭이’로 고쳐진 것이 교과서에 반영돼 ‘아지랭이’가 표준어로 쓰여 왔으나, 현대 언중의 직관이 ‘아지랑이’를 표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아지랑이’를 표준어로 삼았다.” 언중 사이에 이 말의 표기를 유난히 헷갈려하는 까닭은 그런 역사적 경험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해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지랑이’가 다시 표준어로 사전에 오른 것은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다. 이와 동시에 ‘아지랭이’는 공식적으로 표준어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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