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경고를 재경원이 묵살?…위기 감지, IMF 막으려 안간힘

입력 2020-04-10 17:16   수정 2020-04-11 01:35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는 ‘팩트’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국가부도의 날’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주인공인 한시현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김혜수 분)을 내세워 시종일관 정부 당국(영화에선 당시 재정경제원을 재정국으로 표현)을 공격한다. 한은은 마치 선(善)이고, 재경원은 악(惡)한 것처럼 그려진다. 영화가 상영되자마자 전·현직 경제관료와 금융계에서 “무지한 정보로 관객을 현혹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던 이유다. 팩트는 무엇일까.

영화에서 한 팀장은 국가 부도 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한다. 열흘 새 일곱 건의 보고서를 냈지만 묵살당한다. 청와대는 물론 재정국 등 정부 부처는 눈치도 채지 못하는 걸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는 과장이자 사실과도 다르다. 당시 재경원(현 기획재정부)은 1997년 1월부터 11월까지 환율, 외환보유액, 외환시장 동향과 관련한 대책 보고서 83개를 작성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외환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한은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경제 주권을 내주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재경원이 이를 묵살하고 외채 협상을 ‘날치기’로 처리한 것처럼 그려진 부분도 사실과 다르다. 당시 상황을 보면 재경원은 IMF행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애썼다. 구제금융 대안으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은 물론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협상 등을 했다. 오히려 재경원이 구제금융 신청 전에 금융개혁법을 추진했을 때 한은 노조 등이 반대해 무산됐다.

영화는 한 팀장을 ‘정의로운 인물’로 부각하기 위해 과도한 설정도 등장시킨다. 한 팀장이 재경원 차관과 얼굴을 마주한 채 치열하게 설전을 벌이거나, 한은 총재를 제치고 IMF와의 구제금융 협상에 직접 나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현실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얘기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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