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확실하게 돕겠다.”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은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국산 신약과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는 여전히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정부 문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국산 약의 코로나19 효능을 확인하는 치료목적 사용승인 진행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에서다.
제약업계 “국산약 홀대 받아”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해 제약·바이오 회사에서 치료목적 사용승인 신청을 한 건수는 16건이다. 이 중 11건이 승인을 받았다. 이를 통해 이뮨메드, 파미셀, 젬백스 등 3개 바이오회사 약을 국내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쓰고 있다.
치료목적 사용승인은 기존에 허가받거나 임상단계에 있는 약을 의사가 특정한 환자에게 사용해보겠다고 신청하는 제도다. 약값은 해당 약을 판매하는 회사가 부담한다. 약의 유효성 등을 판가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단계 약 외에 시판 중인 약을 승인받은 국내 제약사는 없다. 다국적 제약사 바이엘의 말라리아약 클로로퀸, 애브비의 에이즈약 칼레트라 등이 중앙임상위원회 권고를 통해 국내 환자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시험관 성공에 머무는 제약사들
신약 재창출은 이미 환자 치료에 쓰이고 있거나 개발 마무리 단계에 있는 약을 다른 질환 치료제로 개발하는 것이다.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기업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활용한다. 에볼라약으로 개발하다가 코로나19 치료제로 방향을 튼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도 마찬가지다.
국내 제약사들도 각자 보유한 의약품의 시험관 실험을 통해 코로나19 치료 가능성을 확인했다. 일양약품의 슈펙트, 부광약품의 레보비르, 신풍제약 피라맥스 등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식약처의 치료목적 사용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환자가 위급하지 않고 현재 임상에서 쓰이는 다른 약을 써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절차가 늦어지면서 ‘주가를 띄우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비판까지 듣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에 관문이 지나치게 높다”며 “이미 안전성은 확인된 약이기 때문에 국산 약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국산 약 사용을 승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약을 잘못 복용하면 환자가 위중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약을 꼭 써야 하는 환자인지 등을 검토해 심의한다”며 “국내 제약사에만 장벽이 높은 것은 아니다”고 했다.
외국산 장비 기준 맞춘 키트 논란도
수출 역군으로 떠오른 진단업체들도 볼멘소리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방역을 책임지는 질병관리본부가 검사키트의 사용승인 업무를 맡다 보니 국내 산업을 키우려는 정책 전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산 PCR(중합효소연쇄반응) 장비인 ABI와 바이오래드에 쓸 수 있는 키트 5개만 국내 코로나19 환자 검사용으로 승인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해외의 국산 진단장비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지난 11일 아프리카 가봉의 코로나19 검사 담당자들은 전세기를 타고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바이오니아의 PCR 검사장비와 시약을 수입하고 진단시스템 작동법 등을 배우기 위해서다. 이 업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RNA를 추출하고 검사하는 모든 단계의 장비와 시약을 개발했다. 40여 개 나라에서 수출계약 문의가 빗발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조용하다.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는 “국내 보건소 50여 곳에 PCR 장비를 판매하는 등 국내 점유율이 30% 정도지만 정작 국내 환자 치료에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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