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월드는 12일(현지시간) 직원 4만3000명을 오는 19일부터 ‘일시 해고(furlough)’한다고 발표했다. 전체 직원(7만7000명)의 절반 이상이다. 경비, 시설 담당 등 필수 인력 200여 명만 남긴다는 방침이어서 감원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디즈니월드는 “회사는 일시 해고 직원들의 건강보험료를 최장 12개월까지 100% 부담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충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근로자들이 일터로 돌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시 해고 ‘도미노’
디즈니월드만의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미국 기업들은 줄줄이 대규모 감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일시 해고라는 제도를 통해서다. 일시 해고는 기업이 인력 감축이 필요할 때 재고용을 약속하고 근로자를 해고하는 제도다. 경영 사정이 나아지면 회사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기업만 일시 해고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미 연방정부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되면서 전체 공무원 210만 명 가운데 약 80만 명이 일시 해고됐다.
인건비 비중이 큰 미국 유통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일시 해고를 통해 대규모 감원을 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백화점 메이시스는 직원 12만5000명을 일시 해고하기로 했다. 의류업체 갭은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직원 8만 명 대부분을 일시 해고할 계획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유통업계에서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일시 해고됐다고 전했다.
제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닛산자동차와 혼다자동차, 폭스바겐 등은 미국 공장이 셧다운됨에 따라 직원 2만6000명가량을 일시 해고하기로 했다. 미국 최대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도 직원 2300명을 일시 해고할 방침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미국 최대 중고차 딜러인 카맥스(1만5500명)가 일시 해고에 나섰다.
급증하는 미국 실업자 수
미국에서는 지난 3주간 1600만 건 이상의 실업수당이 청구됐다. 서울과 부산, 대구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은 인구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얘기다. 경제계에서는 2분기 미국 실업률이 12%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4주 전만 해도 미국 실업률은 3.5%에 불과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실업자가 단기간에 폭증한 것은 일시 해고 제도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절차가 워낙 간소해서다. 경영상 필요하면 회사는 근로자의 동의 없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의 무급휴직과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도 적지 않다. 한국에선 무급휴직을 하려고 해도 근로자 동의를 받아야 하고 휴직기간을 정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전문가들은 미국 기업들이 일시 해고를 활용함으로써 구조조정에 맞먹는 유연성과 신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 노동법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기업은 언제든지 인건비 지출을 줄이고 경영 정상화에 집중할 수 있다”며 “재빠르게 몸집을 줄이고 위기 대응에 여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든든한 실업급여 제도가 자리잡고 있는 점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미국 주정부는 최대 26주, 연방정부는 39주간 실업수당을 지급한다. 코로나19 이후 실업급여액은 더 많아졌다. 기존에는 주당 평균 385달러씩 지급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주당 600달러씩 4주간 2400달러를 추가 지급하는 구제 패키지를 통과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 등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대거 채용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시 해고 제도가 있는 등 노동유연성이 높아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따른 부담이 작기 때문이다.
■ 일시 해고
furlough. 미국 영국 등에서 기업이 경영 부진으로 인력 감축이 필요할 때 재고용을 약속하고 근로자를 일정 기간 해고하는 제도.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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