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말로 먹고 산다. ‘정치인의 직업은 말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늘 상대 후보, 상대 당과 맞서 싸우다 보니 거친 언사들이 오가기 일쑤다. 기자가 수 년전 칼럼에도 썼듯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인 스테판 에셀은 저서 ‘분노하라’에서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할 수 있는 것처럼,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했다. 분노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수단, 사회 발전의 자극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이러한 ‘건전한 수준’을 넘어 분노를 위한 분노 수준의 막말을 쏟아내기 일쑤다. 과거 우리 정치판에서 그러한 사례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귀태(鬼胎)’,‘공업용 미싱’‘노가리’‘쥐박이’…. ‘4·15 총선판’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쓰레기’, ‘3040은 무지’, 여성 신체 희롱 발언에 맞장구 친 후보 등이 잇따라 논란이 되면서 선거판을 어지럽히고 있다. 고소·고발전도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분노할 때 분노하더라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점에서 에이브러햄 링컨·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유머 정치’는 되새겨볼 만하다. 이들의 유머정치는 이미 정평이 나 있고, 국내에서도 우리 정치인의 행태와 비교해 자주 소개됐다. 기자도 칼럼, 한경비즈니스 기사 등을 통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이들의 ‘촌철살인’의 유머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4·15 총선판’에서 막말 향연을 벌이고 있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교훈이 됐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링컨의 사례다. 미국에서 금주 운동이 벌어지던 1858년 상원의원 선거 때다. 링컨의 정적 스티븐 더글러스는 링컨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술을 팔았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링컨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글러스는 우리 가게를 가장 많이 이용한 고객 중 한 분이었다. 나는 가게를 그만뒀지만 더글러스는 여전히 가게를 드나들고 있다”고 했다. 누가 승자인지는 말 안해도 알 수 있다.
역공에 나선 더글러스가 “링컨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비판하자 링컨은 “만일 내가 또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다면 이 자리에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들고 나왔겠나”라고 맞받아쳤다. 더글러스는 할 말을 잃었다.
처칠의 사례다. 의회 화장실에서 정치적 라이벌인 노동당수와 마주친 처칠은 그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용변을 봤다. 노동당수가 “총리는 왜 나를 멀리하느냐”고 하자 처칠은 “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하니까…”라고 했다. 처칠이 의회에 지각한데 대해 의원들이 비판하자 처칠은 “여러분들도 나처럼 예쁜 마누라와 산다면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비판했던 의원들도 폭소를 터트렸다.
레이건의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한 기자가 “어떻게 배우가 대통령이 될 수 있나”라고 하자 레이건은 “어떻게 대통령이 배우가 되지 않을 수 있나”라고 받아 넘겼다. 정신이상자로부터 총격을 받은 뒤 병원에 실려 가면서 “예전처럼 영화배우였다면 잘 피할 수 있었을 텐테…” 라고 했다. 1984년 73세에 대통령 재선에 도전했을 때 TV토론에서 월터 먼데일 후보(56세)가 “당신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레이건의 고령을 문제 삼았다. 레이건은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며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답한 것도 유명하다. 레이건의 완승으로 끝났다.
보수주의자인 그가 이념 논쟁 때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책을 읽은 사람이고, 반공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잘 아는 사람이다” 라고 받아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링컨과 레이건, 처칠이 우리 총선판에 온다면 어떤 유머정치를 펼칠까.
ysho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