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란 한 개인의 삶과 정체성의 중심이고, 특히 경제적 수입원이다. 따라서 실직은 인간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다. 실직은 이른 나이의 사망률을 높이고 신체 질병에 시달리게 한다. 혈청 요산, 고혈압, 심혈관 질환 같은 신체적 질병이 그 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젊은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실직과 CRP(몸에 염증이 발생할 때 나타나는 단백질) 변화 정도를 연구했다. 그 결과 실직은 염증을 다섯 배 이상 높였다. 실직자의 이른 사망과 높은 질병률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결과다. 특히 수개월에서 몇 년씩 지속되는 실직은 만성 스트레스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면역세포 기능이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오로지 실직이라는 요인이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더구나 실직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기능 저하는 1년 이후까지 오랫동안 지속된다.
실직이 비자발적일 때 정신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와 비교했을 때 비자발적 실직이 증가한 최근 몇 달 동안 자살 위험이 20~30% 높아졌다. 미국 사피엔연구소에 따르면 실업자의 평균 정신 건강은 취업자보다 35% 낮고, 임상 장애나 정신 장애를 겪을 위험은 취업자의 두 배나 됐다. 실직에 따른 경제적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심리적 손상은 매우 심각하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직면했을 때나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통보받았을 때의 정신적 손상보다 훨씬 더 컸다. 실직을 경험한 성인들은 1년 이상, 심지어 4년이 지나도 심리적으로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직은 사람의 성격도 변화시킨다. 실직 이후 기간이 경과할 때마다 여성은 연민과 공손함이 점점 줄어들고, 남성은 근면성이 점점 떨어지고, 불안 장애나 우울증 같은 부정적인 정서가 급격하게 커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직이 주는 이런 심리적 고통은 경제적인 곤란뿐 아니라 실직자들이 갖게 되는 내재적 슬픔과도 관련이 있다. 실직자는 취업자에 비해 슬픔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
비슷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문자를 보내 그 당시의 감정을 알아봤다.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하루 동안 실직자와 취업자 두 집단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각기 어느 정도인지 측정했다. 그 결과 실직자가 취업자보다 더 적은 즐거움을 그리고 더 많은 슬픔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TV를 시청할 때나 여가생활을 할 때 실직자가 즐거움을 더 느끼지 못했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정도가 더 낮았다. 시간 여유가 있는 실직자에게 시간의 가치와 효용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취업자의 경우 많은 시간을 업무에 할애해야 하고 그로 인해 자유로운 시간에 제한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여가 시간이 주어지면 그 시간의 가치가 더욱 커지고 그만큼 즐거움도 커진다.
이런 즐거움의 높은 강도가 행복감을 가져온다. 똑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실직자는 취업자만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실직자의 ‘슬픈 효과(saddening effect)’다.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가 명명한 이런 슬픈 효과가 이어지면서 실직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 또한 지속된다. 그만큼 면역력도 떨어지고 결국 신체적 질병에 노출된다. 이렇게 실직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병들어 가는 사람들이 늘면 우리 사회 전체가 병들어 갈 수 있다. 실업대란이라는 또 다른 악성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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