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파올로 조르다노가 쓴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는 코로나19 사태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현대인들이 고찰할 주제들을 다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고독이 주는 의미를 되짚는다. 조르다노는 1982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 토리노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발표한 첫 소설 《소수의 고독》으로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레가상과 캄피엘로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조르다노는 코로나19로 이탈리아에서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쓴 글들을 모아 이 책을 냈다. 저자는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코로나19를 해석했다. 사람을 구슬로 가정한다. 75억 개의 구슬이 안정적으로 놓여 있다. 갑자기 감염된 구슬 1개가 굴러와 부딪힌다. 튕겨 나간 구슬은 다른 구슬에 닿는다. 연쇄 반응이 이어진다. 구슬들은 서로 부딪쳐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는 구슬 한 개가 다른 구슬을 전염시키는 수치를 ‘R0’값으로 정의한다. R0값은 기초감염재생산수로 감염자 1명이 전염시킬 수 있는 2차 감염자 수를 뜻한다. 저자는 신규 확진자 수나 사망자 수에 겁먹지 말고 R0값을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수치가 떨어진다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인간이 승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구슬의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저자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의 R0값은 약 2.5”라며 “종식을 위해 수치가 1.0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을 포기하는 데 따른 고통은 혐오로 나타났다. 유럽에선 아시아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저자는 코로나19 이후 일상을 되찾기 위해선 혐오 대신 성찰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노력할 수 있다. 공백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가치를 찾아내자.” (김희정 옮김, 은행나무, 96쪽, 8500원)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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