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한의 리스크관리 ABC] 리스크 관리, 정성분석에 주목하라

입력 2020-04-16 17:50   수정 2020-04-17 00:09

2001년인가 《천재들의 실패(When Genius Failed)》란 책을 읽으면서 왠지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그 유명한 옵션 가격결정 모형(OPM: option pricing model)의 설계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론 숄즈 교수와 로버트 머튼 교수가 비즈니스 파트너로 참여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펀드의 실패기다. 노벨상을 받은 천재가 펀드 투자에서도 떼돈을 벌어 세간의 질투 대상이 됐는데, 실패했다고 하니 보통 사람에겐 조금이나마 심적 위안(?)이 됐던 것이다.

재무학 최고의 가치평가 모델로 널리 쓰이는 OPM은 재무리스크관리(FRM)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주식, 채권, 워런트(일정 수의 보통주를 일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증권), 파생금융상품, 보험상품 등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상품가치를 OPM으로 분석할 수 있다. 금융상품을 디자인하는 것과 해당 상품의 적정 가치를 산정하는 것은 전혀 별개다. 게다가 리스크가 내재된 금융 상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치부되던 리스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측정하려는 천재 학자들의 노력을 금융전문 저술가 피터 번스타인은 “신에게 도전하는” 시도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금융공학으로 지칭되는 계량 리스크 관리는 첨단 수학·통계학·물리학·공학 이론과 컴퓨터 모델링을 바탕으로 1980~1990년대에 만개했다. 퀀트(quant)로 불리는 금융공학자들이 월스트리트를 누비고 다녔다. 계량 리스크 관리는 완벽한 모델로 여겨졌지만 베어링스 사태(1995), LTCM 사태(1998) 등 일련의 대형 금융사고를 겪으면서 그 효과성에 의문이 일었고 급기야 2008년 블랙스완급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신뢰를 크게 잃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혼란은 리스크 관리 실패 탓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정량분석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제 정성분석이 추가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리스크 관리가 주목받고 있다. 소위 ‘통합+융합’ 리스크 관리라고 하겠다. 특정 리스크의 성격을 사고 발생 예측 가능성과 손실 통제 가능성 기준으로 분석하고, 각각의 상황에 적합한 수단을 총동원해 리스크를 관리하자는 얘기다. 리스크 자체보다 리스크 관리 차원의 더욱 현실적인 분석과 통합적인 대응이 강조되는 접근법인데 효과성 차원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다. 리스크 관리는 진화하고 있고 또 진화해야 한다.

장동한 <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보험학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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