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코로나서 비친 R&D대국의 明暗

입력 2020-04-16 18:04   수정 2020-04-17 00:20

바이러스 감염병 관련 연구 투자가 가장 활발한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감염병 연구개발(R&D) 예산만 30억달러가 넘는다. 관련 학자도, 논문도 가장 많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감염병 논문 수는 2018년 기준 1만1000여 편이다. 한국(800여 편)의 13배 수준이다. 공공연구기관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0년간(2009~2018년) 9880편의 감염병 논문을 게재했다. 10여 곳의 한국 공공연구기관을 모두 합쳐 1000건을 겨우 넘는 것과 비교된다. 대학은 더욱 강하다. 하버드대와 존스홉킨스대가 논문 실적에서 1, 2위를 다툰다. 수십 개 대학이 바이러스 실험실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

美, 감염병 연구도 사망자도 1위

하지만 미국은 지금 코로나19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고 사망자 수도 1위다. 그렇게 많은 대학 실험실과 연구기관, 최고의 제약 기업들이 있지만 바이러스 감염에 속수무책이다. 진단 검사에 애를 먹고 있고, 인공호흡기와 마스크 등 의료 자재가 부족하다는 소리가 아직 들린다.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는 반성도 거기에 묻어 나온다.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난주 미국이 그런 훌륭한 R&D 시설과 업적이 있는데도 바이러스 피해가 막심한 이유를 짚었다. 네이처는 무엇보다 대학 실험실과 병원 그리고 감독기관 등이 유기적이지 못하고 따로 대처했다는 데 방점을 뒀다. 병원마다 엄격한 관리 절차가 있어 샘플을 대학에 제대로 건네지 못한다. 오히려 병원은 그들과 친숙한 진단 기업들에 샘플을 건넨다. 대학에 섣불리 줄 수 없다는 병원의 자존심도 한몫한다고 이 저널은 지적한다. 감독기관 등의 행정부처는 프로토콜에 익숙해 시간을 지연시키고 말았다. 네이처는 결국 분열된 미국 건강복지 체계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감염병 연구라면 프랑스도 뒤지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공립병원은 의료기관 중 감염병 연구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프랑스 국립보건연구원은 CDC에 이어 공공연구기관에선 두 번째로 논문을 많이 내는 기관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15일(현지시간) 기준 14만7800명의 확진자가 생겨 세계 네 번째로 감염이 많은 국가다.

韓, 진정한 R&D 좌표 정해야

프랑스 언론들도 그렇게 많은 연구비를 써 나온 우수 논문이 많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생사를 가르는 질병의 현장에선 속수무책이었다고 지적했다. 바이러스 진단 키트도 부족하고 마스크도 제대로 찾을 수 없는 마당에서 코로나19와 힘든 사투를 벌이는 의사들의 긴장만이 전해지고 있다.

과학계는 지금 다시 국가 R&D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되묻고 있다. 그토록 R&D에 많은 성과를 냈지만 지금 벌어지는 것들을 보면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됐다고 개탄한다. 발데마르 퀴트 유럽연합(EU) R&D 디렉터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연구과제는 보다 가시적이고 연구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런 논문을 쓰고 학회에 발표하고 다시 연구비를 타려고 과제를 만드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도전적이고 위험한 연구과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쉽게 접근하기 힘든 구조다. 더구나 비상시를 대비한 근본적 의료 전달 체계에 대한 연구개발이 부족했다는 반성이 나온다. 정부와 대학, 민간의 역할 분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의 국가연구개발 사업도 이런 숙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위기 때 진정한 방향성을 도출하는 게 미래의 성패를 가른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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