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부양을 위해 5000억유로(약 667조원) 규모의 새 유럽연합(EU) 구제기금 설립을 공식 제안했다. 기금을 담보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공동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회원국들에게 지원하는 방식이다. 유로존 공동채권 발행을 반대하고 있는 유럽 최대경제대국인 독일을 설득하기 위한 절충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회원국들이 자금을 출연하고, 공동으로 지급보증을 서는 코로나구제기금 설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기금을 담보로 회원국들이 지급보증을 선 공동채권을 발행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마련한 자금을 회원국에 지원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FT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이달 초 EU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 가량인 5000억유로 규모의 새 기금설립안을 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들에게 전달했다.
앞서 EU 회원국들은 지난 12일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회원국과 기업 및 근로자들 대상 5400억유로(720조원)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코로나19라는 전례없는 사태를 감안하면 EU 차원의 추가 자금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U의 구제금융만으로는 유럽 경제를 살리기 부족하다는 것이 마크롱 대통령의 설명이다.
프랑스가 제안한 새 구제기금은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구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부양을 위해 최소 5년에서 최대 20년까지 운영하는 특수목적법인을 만들자는 뜻이다.
새 구제기금의 핵심은 공동채권 발행이다. EFSF는 유럽 재정위기 당시 유로존 회원국들이 출연한 자금을 담보로 채권을 일시적으로 발행했다. 회원국이 공동으로 지급보증한 채권발행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회원국에 대출해 주는 방식을 활용했다.
앞서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EU 9개 회원국은 지난달 25일 유로존 공동채권의 일환인 이른바 ‘유로코로나채권’ 발행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하지만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재정 여력이 탄탄한 국가들은 유로채권 발행에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자 프랑스가 내놓은 절충안이 새 구제기금 설립이다. 유로존 회원국이 지급보증을 선 공동채권을 발행하되, 발행 주체는 각 회원국이 아닌 새 특수목적법인이다. 전체 발행규모도 기금이 담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유럽의 연대 부족이 남유럽의 포퓰리즘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구제기금 설립에 합의하지 못하면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포퓰리스트들이 이길 수 있다”며 “유로존의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오는 23일 화상회의를 열고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을 공식 논의할 계획이다. EU 관련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은 프랑스 정부의 이 같은 제안에 많은 유로존 회원국들이 찬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지난달 24일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화상회의에서 유로존 공동채권 발행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재정여력이 탄탄한 북유럽 국가들은 공동채권 발행을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자국민이 낸 세금이 다른 회원국을 돕는 데 쓰이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설명이다.
공동채권 도입시 자체 국채를 발행할 때보다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신용도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유럽의 연대를 위해 공동채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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