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명창은 철성(鐵聲)으로 요약되는 동편제 판소리의 적자다. 오죽하면 쇳소리라 했을까. 도끼로 장작 패듯 뻣뻣하게 통성으로 내지르는 소리가 일품이었다. 전북 남원시 향교동에서 지게 지고 농사지으며 후학을 기른 그는 민초 속에서 부대끼며 저절로 우러나는 농 깊은 소리를 이렇게 대변했다. “서울 사람들이 촌놈이라고 비웃어도 나는 오히려 그 사람들을 비웃네. 나는 돈을 싸줌서 서울서 살라고 혀도 못 살아. 거가 사람 사는 곳인가. 그러고서 언제 소리 공부허는지 모르겄네.”
강 명창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배일동 명창(55)은 ‘폭포 목청’으로 이름난 소리 못지않게 이론이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그가 쓴 《독공》 《득음》 두 권은 평소 이론가들을 넘어 실천적 예술 경험을 토대로 한 책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증명했다.
배 명창은 이 책에서 스승이 남긴 가르침을 직설적으로 전하고 있는데 소리꾼이 아니라도 옷깃 여미며 새겨들을 얘기가 많다. 판소리 어떤 대목을 가르쳐 주실 때 왜 세 번씩 다른 시김새, 즉 소리 방법으로 일러주시느냐는 질문에 강 명창은 답한다. “아, 이런 멍청이가 없네잉. 그중에서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서 부르면 될 것 아니여. 그건 아무것도 아니여. 그렇게 배운 놈을 가지고 산으로 가서 수만 번 부르다 보면 거기서 또 좋은 놈이 볼가져 나온다 그 말이여. 그것이 진짜 자기 소리여.”
판소리는 저잣거리에서 더불어 울고 웃으며 살아남은 민속음악이다. 민중이 들어주고 즐겨주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숙명의 소리다.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나라님이 보호에 나서도 그 명줄을 붙들지 못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도는 최소한의 방어막일 뿐, 일상에서 널리 소비되지 않으면 조종(弔鐘)을 울릴 수밖에 없다.
국악이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됐다.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펼쳐지지만 대중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판소리 등의 우리 국악계가 그동안 재즈와의 접목을 꾸준히 시도해왔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일반 대중 정서에 어느 정도 근접하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인 듯싶다.
혹시 ‘미스 트롯’과 ‘미스터 트롯’에서 한 수 배우는 방법은 없을까? 판소리의 한(恨)과 흥(興)에 서민의 희로애락을 버무린 트로트의 맛이 어우러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종교배의 시도라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전통도 지금 여기에 맞게 변신하면서 새로운 전통이 되는 것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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