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 생산과 수출, 내수 등 3대 지표가 모두 뒷걸음질치고 있다. 완성차 회사들은 중국발(發) 부품 수급 차질에 따른 1차 쇼크(2월)에 이어 미국과 유럽 내 확진자 급증으로 해외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는 2차 쇼크(3월)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달 들어선 해외시장 ‘소비 절벽’ 탓에 수출길까지 막히는 ‘3중고’를 겪고 있다.
◆불 꺼진 완성차 공장
2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보다 15.4% 감소한 80만9975대에 그쳤다. 지난 2월 중국에서 수입하던 ‘와이어링 하니스’(전선 뭉치) 부품 수급이 코로나19 여파로 막히면서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주요 자동차 공장이 대거 멈춰선 결과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중국에 이은 세계 2, 3위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소비 침체에 빠져서다. 미국의 지난달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40% 줄었다. 프랑스(-72%)와 이탈리아(-86%), 스페인(-69%) 등 유럽 국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생산한 차를 팔 곳이 없어진 자동차업계는 감산에 들어갔다.
현대차는 지난 13~17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싼을 생산하는 울산 5공장 2라인을 멈췄다. 울산 5공장 2라인에서 생산하는 투싼은 미주와 중동으로 수출된다. 코로나19 여파로 이들 지역의 판매사가 대부분 영업을 중단하면서 사실상 수출길이 막혔다. 유럽으로 수출하는 코나와 벨로스터를 제작하는 현대차 울산 1공장도 주문 축소로 가동량을 조절 중이다.
기아차는 경기 광명 소하리 1·2공장과 광주2공장에 대해 23일부터 29일까지 휴무를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아차의 국내 공장 9곳 중 휴업 논의에 들어간 이들 3곳은 프라이드와 스토닉, 스포티지, 쏘울 등 수출용 차량의 생산 비중이 큰 곳이다. 기아차 경차 모닝과 레이를 위탁 생산하는 동희오토도 지난 6~13일 공장 문을 닫았다. 기아차는 연간 모닝 생산량 20만 대 중 75%를 수출한다. 그런데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럽 판매사들이 영업을 중단하면서 주문이 끊겼다. 생산량의 80% 이상을 미국 등에 수출하는 한국GM도 인천 부평공장의 특근을 중단했다.
◆중견·중소 부품사 도산 우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완성차 가동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부품사들의 경영난이 심화될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이미 보쉬와 콘티넨털, 마그나 등 주요 부품사와 굿이어 등 타이어 업체들이 생산을 중단했다. 납품할 곳이 없어서다. 현대모비스 서산 모듈공장, 현대위아 평택 엔진공장 등 국내 주요 부품 공장들도 일시 휴업에 들어갔다. 완성차에 들어가는 타이어를 납품하는 금호타이어도 재고가 쌓여 이달 두 차례 걸쳐 총 닷새간 광주공장과 곡성공장, 평택공장 가동을 멈춘다.
완성차와 부품업계가 참여한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부진과 공급 차질이 오는 7월까지 이어지면 연간 매출액 170조원의 약 30%인 51조원의 매출 차질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고정비와 휴업 수당 인건비 등 유동성 부족분도 28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국내외 자동차 공장 감산이 잇따르고 있는 이달부터 부품사들의 경영난이 한층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글로벌 자동차 수요 절벽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책은행의 1~3차 협력사 기업어음 매입 등 총 32조8000억원의 유동성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다. 법인세와 부가세, 개별소비세 납부 또는 유예, 4대 보험과 제세금 납부 기한 유예도 건의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 진정 이후를 대비한 노동 규제 완화도 제안했다. 자동차 수요 급증 시기를 대비해 일시적 초과 근로 허용 등 규제 완화와 노조의 전향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 세액지원 확대, 법인세 세율 인하 등 세금 감면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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