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엑스레이 촬영기기 생산업체 디알젬은 올해 해외 수주 목표를 이달 초 모두 채웠다. 올해 수주 목표 740억원의 약 80%다. 작년 월 200여 대를 생산했던 경북 구미공장은 올 들어 월 800대까지 생산량을 늘렸지만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박정병 디알젬 대표는 “미국 유럽 일본 공장이 문을 닫자 변방으로 인식되던 한국 기업에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 주자는 진단키트 회사들이다.
씨젠은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출 물량 1000만 개를 달성했다고 21일 발표했다. 다음달부터는 월 2000만 개의 진단키트를 생산한다. 3월 말 기준 월 100만 개이던 생산 규모를 한 달 새 20배로 늘리는 것이다. 개당 1만원 안팎인 진단키트를 월 2000억원어치 파는 셈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1219억원)을 한 달 만에 뛰어넘을 수 있다. 수젠텍 코젠바이오텍 등 진단회사들의 매출도 수직상승하고 있다.
진단키트를 선두로 엑스레이 인공호흡기 등 의료장비, 의약품 원료, 임상시험 수탁, 코로나19 치료제 생산 등으로 온기가 퍼지고 있다. 디지털 엑스레이 기기 부품업체 레이언스도 올 1분기 수출이 작년 동기 대비 70% 늘었다. 원격의료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수출하는 인성정보는 해외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
박순만 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은 “의료기기 분야에 뛰어난 인재가 몰렸다”며 “한국의 새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디지털 엑스레이 수주 4배 폭증…"임상실험 해달라" 주문도 쏟아져
'K바이오' 잇단 수주 낭보…'바이오 변방'서 중앙으로
비임상 임상수탁(CRO) 업체 노터스의 김도형 대표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회사로부터 긴급 제안을 받았다. 미국 내 연구소가 줄줄이 폐쇄되자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비임상시험을 부탁해온 것이다. 비임상시험이란 신약 개발 후 동물 등에 투약을 해보는 단계다. 해외 유명 제약사들은 영어권 국가의 실험 경험이 많은 회사와 거래해 한국 업체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김 대표는 “올 들어서만 세 건의 해외 계약이 진행 중”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후 달라진 한국 바이오 회사들에 대한 인식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대도약하는 K바이오
미국 유럽 등에 밀려 변방으로 여겨져온 K바이오가 ‘퀀텀점프’(대도약)하고 있다. 뛰어난 기술력에 한국인의 ‘손기술’이 더해진 의료장비와 진단키트, CRO 분야 등에서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게 업계 평가다. 전통 제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의료장비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벌써 넘어서고 있다.
디알젬은 지난해 2600대 수준이던 디지털 엑스레이 촬영기기 생산량을 월 800대 규모로 늘렸다. 연간 생산량만 최대 1만 대 수준에 이른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의 폐렴 증상 검사를 위해 하루 최대 두 번 흉부 엑스레이를 촬영하면서 엑스레이 기기 수요가 폭증한 덕분이다. 사상 최대였던 작년 매출을 올해엔 단 두 달이면 올릴 수 있게 됐다.
이 회사는 엑스레이를 찍으면 기존의 필름 대신 컴퓨터 화면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장비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5~10%의 점유율을 올렸지만 현재는 유럽과 미국의 해외 경쟁사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아 나홀로 수주 낭보를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엑스레이 기기의 눈에 해당하는 센서를 제조하는 레이언스도 호실적이다. 수출 물량이 지난 1분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70% 늘어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뷰웍스 역시 1분기 국내외 모바일 의료용 물량이 전년 동기보다 50% 증가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진단키트 생산업체도 고공행진 중이다. 작년 한 해 600만 개가량의 진단키트를 생산한 씨젠은 21일 기준으로 벌써 1000만 개의 진단키트를 수출했다. 다음달부터 월 2000만 개 생산체제에 들어간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출이 늘면서 암 등 다른 진단 제품 매출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임신부로부터 기형아 진단을 하는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랩지노믹스는 올해 매출(1835억원)이 전년 332억원보다 여섯 배 정도 늘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김상표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진단키트 매출 증가와 함께 다른 진단 제품에 대한 관심이 커져 매출이 전반적으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CRO 업체도 호황이다. 569건의 실험을 위탁받은 노터스는 올해 30% 이상의 매출 증가가 예상된다.
문 닫은 곳 없는 생산시설 ‘호평’
한국 업체들이 코로나19 위기 속에 글로벌 ‘러브콜’을 받는 이유로 △미국·유럽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 △정부·기업의 발 빠른 코로나19 대응 △공장·연구소 생산 차질이 거의 없는 점 등이 꼽힌다.
박순만 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화장품산업단장은 “의료기기는 기술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진다면 판매 자체가 어려운 분야”라며 “한국이란 이유로 소외를 받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인식 개선과 함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발 빠른 코로나19 대응도 주효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여러 기업이 사업적 위험성을 감수하고 제품 개발에 나섰고 생산 시설도 발 빠르게 늘리고 있다”며 “이런 유연함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재택근무와 생산 관리로 문을 닫은 바이오 회사가 거의 없는 것도 높게 평가받는다. 세계적인 생산 차질과 수요 증가로 엑스레이 등 의료기기 가격은 미국에서 두세 배 급등했다.
박정병 디알젬 대표는 “지난 2월부터 번잡한 시간을 피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고 대부분의 직원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며 “이탈리아 스페인 등 경쟁 회사들이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이주현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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