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마이너스 유가' 미스터리

입력 2020-04-21 18:01   수정 2020-04-22 00:39

석유시장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생수보다 쌀 정도로 기름 값이 떨어져도 산유국들이 계속 석유를 캐내는 것부터 이상하다. 심지어 국제 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해괴한 일까지 벌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

원유 생산이 지속되는 이유는 시장 점유 경쟁 때문이다.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생산비가 높은 산유국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일종의 치킨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마다 다른 손익분기점도 중요하다. 최근 유가 급락의 주범인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생산비가 배럴당 10달러 정도로, 미국 셰일오일 업계(45달러)나 베네수엘라·멕시코(55달러)보다 훨씬 싸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어떻게 마이너스 유가가 가능할까. 그제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은 한때 배럴당 -40.32달러까지 떨어졌고 -37.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최초로 등장한 마이너스 유가는 원유 선물거래가 갖는 특성과 극심한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WTI 5월물의 만기일은 21일이다. 원유 선물은 만기가 되면 차액을 결제하지 않고 현물을 주고받는다. 선물 트레이더들은 만기까지 매수계약을 갖고 있으면 원유 현물을 인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세계 원유 저장시설은 거의 꽉 찼다. 시간에 쫓기고 공급 과잉으로 원유를 둘 곳도 없어진 트레이더들은 경쟁적으로 값을 내려 선물을 팔아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기름값을 안 받는 것은 물론 처리비까지 줄 테니 제발 내 원유 좀 가져가라”고 앞다퉈 나섰고 그 결과가 마이너스 유가로 이어진 것이다.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ETF(상장지수펀드)에 천문학적 돈이 몰린 것도 역설적으로 ‘마이너스 유가’를 부추겼다. 이런 ETF 대부분이 5월물 만기를 앞두고 대거 6월물로 갈아탔다. 그 과정에서 5월물 매도가 쏟아지면서 매수 공백이 발생해 가격 하락이 더 가팔랐다. 산유국들 간 합의한 하루 970만 배럴 감산이 이달이 아닌 내달부터 시작된다는 점도 5월물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다.

이제 관심은 5월물의 만기 도래로 최근월물이 된 WTI 6월물의 가격 추이에 쏠리고 있다. 배럴당 20달러 전후에서 움직이는 유가가 또다시 곤두박질칠지, ‘검은 황금’으로 체면치레를 하게 될지, 그 어느 때보다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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