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오프닝크레디트가 걷히고 마고(미셸 윌리엄스 분)의 부엌이 보인다. 마고는 텅 빈 눈동자로 머핀 반죽을 하고 있다. 머핀을 오븐에 넣고 그 앞에 쪼그려 앉는다. 오븐에서 나오는 불빛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 불빛만이 마고가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었을까. 한 남자가 마고를 무심하게 지나가 창가에 우두커니 선다. 둘은 마주보지 않는다. 마고는 오븐 불빛을, 남자는 창밖을 응시할 뿐이다.
한계의 개념과 매몰비용
프리랜서 작가인 마고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남편 루(세스 로건 분)와 5년차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고는 글을 쓰러 낯선 곳으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마고는 그곳에서 대니얼(루크 커비 분)을 만난다. 까칠하지만 묘한 매력의 대니얼. 마고와 대니얼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심지어 대니얼은 마고의 앞집에 살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마고는 루와 대니얼 사이에서 갈등한다. 루는 언제나 마고에게 애정을 쏟아붓지만 예전 같은 두근거림은 없다. 마고는 “결혼했다”며 대니얼에게 선을 긋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말을 툭툭 던지지만 이런 대화마저 그녀의 설렘을 재촉한다. 마고는 스스로에게 “우리도 사랑일까”라고 묻고 또 묻는다.
마고는 두 가지 선택 사이에 놓여 있다. 대니얼에게 느끼는 강렬한 감정과 지금까지 쌓아온 루와의 관계에 대한 책임. 경제학자라면 매우 간단한 답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개념인 ‘한계’를 생각하면 말이다. 한계는 추가로 얻는 가치를 일컫는다. 한계는 경제학에서 모든 판단의 잣대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과는 별개로 당장의 선택에서 무엇이 나의 효용을 높이느냐가 경제학의 주요한 의사결정 논리다. 가령 도박에서 100만원을 날린 사람이 다음 도박을 할 때 생각해야 할 것은 당장의 도박에서 승리할 확률뿐이다. 100만원을 날린 것은 그저 ‘매몰비용’에 불과하다. 100만원이라는 본전을 찾기 위해 도박의 승률이 낮음에도 계속 도전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매몰비용은 현재의 선택에 아무런 판단 근거가 되지 않는다.
냉혈한이라고 욕을 먹을지언정 경제학자들은 루와 지금까지 나눴던 사랑은 매몰비용으로 치부한다. 지금 나의 만족을 더 채워주는 대니얼과의 사랑이 경제학자들의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사랑에도 적용되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그렇다면 루에 대한 사랑은 왜 줄어들었을까. 사랑과 시간의 알고리즘은 극히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식는다. 사랑으로 느끼는 효용의 ‘한계’가 줄어드는 것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재화와 서비스 등 특정한 제품을 사용할수록 그 제품에서 느끼는 효용은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며칠 굶은 사람에게 햄버거를 준다면 극에 달하는 행복을 느끼리라. 첫 번째보다는 별로겠지만 두 번째 햄버거도 그간 굶었던 시간을 따진다면 꽤 맛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네 번째 햄버거는 이미 배부른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사람은 특정 제품을 계속 소비하다 보면 효용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래프1》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햄버거 한 개(A점)를 먹을 때는 10의 효용을 얻는다. 두 개(B점)째에선 5의 새로운 효용을 얻어서 총효용은 15다. 세 개(C점), 네 개로 갈수록 늘어나는 한계효용이 줄어들다 보니 그래프는 점점 평평해진다.
이와 같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르는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그래프1》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된다. 마고의 루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마고가 루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 대한 효용은 매우 컸다. 시간이 지날수록 효용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에 비해 대니얼에 대한 효용은 극대화돼 있다. 《그래프2》는 이들의 한계효용을 비교해준다. D점은 마고가 현재까지 대니얼에게 느낀 효용의 총합이다. F점은 루에 대한 효용의 총합이다. 루와 함께한 시간이 많으니 총효용은 대니얼에게서 얻은 총효용보다 크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한계효용’은 다르다. 각 점을 접하는 직선들의 기울기는 해당 지점의 한계효용을 뜻한다. 기울기란 X축의 한 단위가 늘어날 때 Y축이 증가하는 양이란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의 초기 지점인 대니얼의 D점에 접하는 직선의 기울기가 사랑의 후기 지점인 루의 F점에 접하는 직선의 기울기보다 월등히 크다. 대니얼에 대한 한계효용이 훨씬 크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의 이면 ‘위험회피성향’
그럼에도 마고는 고민한다. 당장 루를 떠난다면 그녀는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당연하게 여기던 루의 장난스러운 아침 인사도, 그녀를 위해 정성스레 준비하는 루의 저녁식사도 더 이상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당장 무언가 새롭게 얻는 효용이 없다 해도 떠나면서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의 이면인 ‘위험회피성향’이다.
《그래프1》을 보면 B점에서 1단위를 늘려서 C점으로 가면 효용이 3 증가하지만 1단위를 줄여서 A점으로 가면 효용이 5 감소한다. 즉 사람은 얻는 것에 대한 기대효용보다 잃는 것에 대한 기대손실이 더 크다. 루와 함께 있어 얻는 기대효용보다 루를 떠나 잃을 기대손실이 더 클 것이기에 마고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고는 루를 떠난다. 루를 잃는 손실이 크더라도 대니얼과 함께 있어 얻는 기대효용이 더 컸기에 마고는 루를 떠났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당장 마고는 대니얼과의 시간이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용의 크기는 루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루와의 사랑이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한계효용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영화 초반 오븐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마고 뒤에 서 있는 남자는 루가 아니라 대니얼이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예외 ‘중독’
지금까지의 이야기 전개에서 우리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사랑의 감정을 단순히 숫자놀이처럼 냉혹하게 딱 잘라 말하는 부분이다.
‘공리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돈, 무게, 길이 등과 같이 정량화된 수치들뿐만 아니라 감정, 매력 등 정성적 가치도 숫자로 논하는 것이 공리주의적 사고다. 타당한 반박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제학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경제학은 공리주의적 사고를 대전제로 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적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해소되지 않는 질문은 있다. 효용이란 소비할수록 꼭 줄어드는 것일까? 경제학에서도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중독성이 강한 제품은 소비할수록 효용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인다. 담배, 알코올, 도박 등은 이 재화를 처음 이용했을 때보다도 익숙해지면 더 큰 효용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이란 감정도 이와 같을 수 있다. 연애 초반 불꽃 튀는 호르몬 분비는 아니라도 사랑의 시계가 흘러갈수록 더 깊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다. 추억이 겹겹이 쌓이면서 그 사람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애틋함이 생긴다. 사랑의 효용곡선은 점점 평탄해지기보다는 점점 가팔라질 수 있다. 사랑과 시간의 알고리즘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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