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인종이 모인 미국 사회는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로 불린다. 서로 다른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조화를 이룬다는 뜻에서 ‘샐러드 그릇(salad bowl)’이라고도 한다. 그 접점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꽃피었다.
오늘의 미국을 일군 가장 큰 힘은 이민자 출신 인재다. 미국 정계에는 아일랜드 혈통이 많다. 대통령을 지낸 앤드루 존슨, 해리 트루먼,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 빌 클린턴을 비롯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이 아일랜드 후손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이민자의 출신 분포가 훨씬 넓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영국 방직공 집안 아들이었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고,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러시아계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500대 기업 창업자의 43%가 이민 1~2세대다. 정보기술(IT) 분야는 50%에 이른다. 실리콘밸리 인력 4분의 3은 아시아·중동 출신 1세대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사도 4명 중 1명이 이민자다.
이런 ‘이민자의 나라’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장벽 설치와 이슬람권 입국 금지에 이어 합법적인 이민자들의 영주권 발급까지 60일간 중단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918년 스페인독감 때, 2차대전 때도 이민자를 받아들였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고 보니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 이민 3세이고, 부인 멜라니아는 슬로베니아 출신이다. 아무리 일자리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중세 성곽사회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민자들을 맞이하던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거기에 새겨진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을 내게 보내라’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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