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연일 휘청이는 상황에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21년 만의 최저치로 하락했다. 초유의 위기를 맞은 정유업계는 정부에 추가 대책을 호소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6월물 가격은 22일 오후 1시 30분께 싱가포르 시장에서 전일보다 배럴당 17.3%가량 떨어진 15.98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1999년 6월 이후 거의 21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6월물 가격도 오후 3시 30분 현재 10.81달러 수준이다. 앞서 WTI 6월물 가격은 21일(현지시간) 뉴욕 시장에서 배럴당 43.4%(8.86달러) 내린 11.57달러에 거래를 마쳤으며 하루 전에는 5월물 WTI가 만기일을 앞두고 마이너스 37달러로 추락하기도 했다.
국제 유가가 연일 폭락세를 보이는 이유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원유 수요 위축에 재고가 늘면서 극심한 저장고 부족 현상을 겪고 있어서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제조원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의 셰일 업체들은 이미 하나둘 파산 위기에 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셰일 업체인 유닛코퍼레이션은 파산보호 신청을 계획 중이다. 이미 1분기에 파산 신청을 낸 미국의 원유·가스 업체는 이미 7개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내 정유업계도 위기감을 느끼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유동성 지원 요청을 비롯한 각종 건의를 했다.
이날 회의에는 조경목 SK에너지 사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 류열 에쓰오일 사장 등 국내 정유사 대표들이 참석했다. 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과 양수영 한국석유공사 사장 등 지원 기관의 수장들도 자리했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는 석유 수요 감소와 국제유가 폭락,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제마진 악화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SK에너지 조경목 사장은 "경영 상황이 최근 10년 중 최대 위기"라며 셰일가스 패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산유국 간 갈등으로 실적이 최악 수준이었던 2014년과 비교해 "그때와 비슷하지만, 더 안 좋다"고 말했다.
정유사들은 위기에 대응해 공장 가동률을 기존 100%보다 20∼30% 낮춰 생산을 줄이고 급여 반납, 희망퇴직 등을 추진하는 비상경영을 가동하고 있으나 자구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았다.
앞서 정부는 석유 수입·판매부과금과 관세를 유예하고 석유공사의 여유 비축시설을 임대하는 등의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또한 국세청은 이날 정유업계 4월분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납부 기한을 7월까지 3개월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정유업계는 정부의 이런 지원이 유의미하지만, 추가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국제유가 폭락에 따라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했고, 수요 감소까지 겹쳐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협의된 석유공사 비축시설 대여료 한시 인하의 경우 업체별로 3개월 기준에 수십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납부 유예가 논의된 석유관리원의 품질검사 수수료는 내수 판매용 석유제품에 리터당 0.47원으로 국내 정유 4사 기준으로 월 2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아울러 석유저장시설 개방검사 유예 방안은 매년 원유와 석유제품 저장시설의 10% 정도를 대상으로 진행하는데 올해 유예하면 내년에 20%를 개방검사 해야 하므로 1년을 연장하는 방안이 아니면 실익은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유업계는 세제 지원 확대 외에 투자 인센티브 확대, 규제 완화 등도 요청했다.
성 장관은 "정유업계가 직면한 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해 조치 가능한 지원 수단을 지속 발굴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업계 건의사항에 대해 유관 부처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국민 후생 증진 효과, 석유업계 경영 여건 등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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