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탐험선의 운명을 가른 것은 ‘리더십’이었다. 카를루크호 선장인 빌하율뮈르 스테판손은 부하들을 버리고 탐험선을 떠났다. 인듀어런스호의 어니스트 새클턴 선장은 자신의 침낭과 음식을 선원들에게 양보하며 고난을 함께했다. 가장 위험한 임무를 솔선했고, 절망적인 순간엔 “우리는 살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용기를 북돋웠다. 리더십 전문가 데니스 NT 퍼킨스 박사는 저서 《새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에서 이 남극 탐험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로 꼽았고, 새클턴을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탐험가 5위에 올렸다.
난세엔 영웅, 불황엔 거부 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미증유의 위기 속에 고통을 겪고 있다. 공장은 멈췄고, 거리와 학교가 텅 비었다. 실업률이 치솟고 금융시장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위기 속에 모두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며 천천히 좌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105년 전 남극의 살인적인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극단적 선택의 유혹에 노출됐던 인듀어런스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난세에 영웅 나고 불황 때 거부(巨富) 난다’고 했다. 위기는 극복 가능성뿐 아니라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이라는 씨앗까지 내포하고 있다. 기존 질서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체계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부저’다. 역사는 위기 자체보다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위기를 적극 활용한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런 예가 한국에도 있다. 서두칠 전 한국전기초자 대표는 1997년 말 부채 비율 1114%, 고질적 파업 등으로 ‘퇴출 0순위’로 꼽히던 회사를 맡았다. 모두가 안 됐다고 혀를 찼다. 그러나 그로부터 꼭 3년 만에 서 전 대표는 한국전기초자를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계 1위 TV브라운관용 유리 제조업체로 바꿔놨다. 노조를 포함한 회사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현장에서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낸 결과였다.
위기속에 운명을 달리한 국가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30대 그룹에서 19개 기업 집단이 사라지거나 뒤로 밀려났다. 위기에 적응하지도,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도 없었던 탓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만주국 유고슬라비아 등 한때 지역을 호령하던 9개 나라가 20세기 들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한국이 앞으로 21세기의 카를루크호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인듀어런스호나 한국전기초자의 기적을 다시 쓸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 방법에 달려 있다고 본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당장 어렵다고 잔뜩 움츠리고, 과거 경영진이나 재무통들을 중용하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나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잘했다는 칭찬에 취해, 총선 압승 결과에 우쭐해서 일부 지지층의 요구대로 나라를 끌고 나간다면 카를루크호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한 명까지 끌어안으며 새로운 비전을 향해 달려갔던 새클턴과 서두칠의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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