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핫펠트, 잠겨있던 3년의 시간…빗장을 풀다

입력 2020-04-23 09:08   수정 2020-04-23 09:10


2017~2019년. 그룹 원더걸스 메인보컬에서 싱어송라이터 핫펠트(HA:TFELT)로 변신한 이후 권태로움과 불안정한 감정이 뒤엉켜 있던 3년의 시간을 그는 '잠겨있었다'고 표현했다. 스스로도 너무 낯설어 혼란스럽기만 했던 '잠겨있던 시간들'을 '인간 박예은'이라는 키로 열어낸 핫펠트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노래와 책에 담겨져 나온다.

핫펠트는 23일 정규 1집 '1719'를 발매한다. '1719'는 핫펠트가 싱어송라이터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겪었던 일들을 담아낸 앨범으로, 불안정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17~19세와 같았던 이른바 '잠겨있던 시간들'을 자전적으로 풀어낸다. 핫펠트는 앨범의 각 트랙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챕터들로 이루어진 스토리북(부제: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도 함께 발간한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핫펠트의 3년은 어땠을까…'1719'<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솔로 가수로 첫 발을 내딛고 첫 정규앨범이 나오기까지 무려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에 대해 핫펠트는 "2017년부터 정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계속 내겠다는 마음만 먹고 정작 발매하지 못했다. 중간에 감정적으로 힘든 일도 있었고,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면서 "2017년을 시작으로 2018~2019년에 걸쳐 작업하며 애정을 가졌던 곡들이 모여 '1719'라는 타이틀로 완성됐다. 정규가 많이 늦어져서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3년이라는 시간이 모여서 하나의 앨범이 된 것이지 않느냐. 한편으로는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1719'에는 더블 타이틀곡 '새틀라이트(Satellite)', '스윗 센세이션(Sweet Sensation)'을 비롯해 '라이프 석스(Life Sucks)', '피어싱(Piercing, feat. THAMA)', '새 신발(I wander, feat.개코)', '위로가 돼요(Pluhmm)', '나란 책' 기타 버전, '시가(Cigar)', '메이크 러브(Make Love)', '솔리튜드(Solitude)', '3분만(feat.최자)', '블루버드(Bluebird)', '스카이 그레이(Sky Gray)', '하우 투 러브(How to love)'까지 총 14곡이 수록됐다. 빈틈없이 채워진 트랙, 핫펠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곡이 없다.

작업 과정에 대해 핫펠트는 "13년 넘게 음악을 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앨범을 준비해 본 적은 없었다. 혼자 내는 첫 정규 앨범이라서 모든 곡을 직접 다 작업해야 했다. 정말 손이 많이 가더라"고 털어놨다. 이어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다. 믹스에도 참여했고, 뮤직비디오도 4편이나 찍었다.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면서 과연 이 앨범이 끝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다. 결과물이 나와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후련하다"고 고백했다.

앞서 핫펠트는 첫 솔로앨범 'Me?'를 시작으로 'MEiNE', 'Deine', 'Happy Now'까지 발매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 독창적인 음악성을 인정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는 정규 앨범인 만큼, 이번 '1719'에는 유독 공을 들였다. 이유는 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아메바컬쳐로 옮기면서 핫펠트로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였다. 가사 중점으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특히 작사는 전부 내가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외부에서 곡을 받아보려고도 했는데 색깔이 묻어나지 않아서 결국 내가 작업한 곡으로 준비하게 됐다. 이렇게까지 많은 곡을 작업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간 해보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가장 중요한 건 그 곡이 가진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말문을 연 핫펠트는 "'1719'를 시간과 공간 두 가지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1719'가 시간을 뜻하기도 하지만 잠겨 있는 문을 열어서 들어간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앨범 커버도 호텔방의 룸넘버처럼 거울 뒤에 '1719'를 써놓는 연출을 했고, 사운드적으로도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일렉트로닉한 느낌을 많이 살렸다. 또 뮤직비디오로 나의 내면을 방으로 시각화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음악으로 되살아난 핫펠트의 '1719'<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3년의 시간 동안 핫펠트는 음악적 고민을 겪었다. 소신과 대중성,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이 일었다. 어느 정도 타협이 이뤄졌을까.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해답을 찾았는지 묻자 핫펠트는 "노래를 듣고 '핫펠트가 이런 느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실 것 같다. 장르에 국한되기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쭉 이어지는 것 같다. 첫 솔로 앨범인 'Me?'에서 보여줬던 곡들의 연장선 같은 노래도 있다. 이렇게 조금씩 색깔이 잡혀가고 있지 않나 싶다"고 고백했다.

무한의 굴레 같았던 고민은 한때 권태로움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한동안 깊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는 핫펠트는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몸도 안 좋았고, 무엇보다 기운이 너무 없었다. 조금만 걸어도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를 일으켜세운 건 결국 음악이었다고. 핫펠트는 "녹음하고 믹스하면서 역시 음악할 때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정말 끝없이 에너지가 나오더라. '가수가 천직이기는 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17년에 작업한 곡들도 있었는데 과거에 느꼈던 그 감정들이 다시 살아올라오더라. '이게 음악의 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고민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지독한 권태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던 음악. 그러나 역시 음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핫펠트는 "음악을 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런 기분을 겪는 것 같더라"면서도 "그러나 내가 6개월 뒤에 죽는다고 한다면 난 여전히 음악이 하고 싶다.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면서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내가 만든 노래들이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꾸 찾아냈다면 이제는 내 음악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고, 그걸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추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생각의 전환이 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묻자 '맹장수술'이라는 다소 신선한 답변이 돌아왔다. 핫펠트는 "일단 수술 전까지 너무 아팠고, 전신 마취를 하러 들어가는데 '마취에서 못 깨어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웃었다. 그는 "정말 큰 아픔을 느끼고 나니까 죽어있던 세포들이 확 살아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아 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다. 몸만 좋아지면 뭐든지 다 할 거라고 다짐하는 시기였다. 정말 맹장수술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글로 써내려간 '인간 박예은'<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핫펠트는 '1719' 발매와 함께 1719권의 한정판 스토리북을 발간한다. 책에는 각 이야기에 어울리는 일러스트와 핫펠트의 손글씨, 낙서, 명언 등이 삽입돼 있다. 각 챕터가 앨범 트랙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곡의 배경 및 상황을 부연,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특히 책에 녹아든 '인간 박예은'의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핫펠트는 그간 구체적으로 밝힌 적 없었던 가족, 사랑, 이별 등에 대한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가감없이 적어내려갔다. 자칫 어두워보일 수 있는 내면의 아픔부터 불안과 고민, 작은 희망과 위로까지 무심한 듯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너무 솔직해서 가끔 놀랍기도 하지만 어느새 '인간 박예은'의 시간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터. 핫펠트는 "대중분들이 함께 느껴주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1719'는 트랙 반 이상이 2017년도부터 작업한 곡이다. 어두운 느낌의 곡들이 많이 나왔는데 노래만 들어서는 대중들이 '이게 무슨 얘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 잘 와닿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스토리북을 내는 이유를 밝혔다. 이어 "스토리북에는 1년 정도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털어놨던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상담해주신 원장님이 글 쓰는 걸 추천해줬다. 테라피적인 차원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걸 책으로 선보이면 대중들도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핫펠트는 "글을 쓰는 게 쉽진 않았다. 어떤 부분들은 꺼내는 것조차 힘들었다"면서도 "글을 써내려가면서 확실히 정리가 많이 되더라. 당시의 감정에 조금은 초연해지기도 했다. 얽혀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풀어지고 정리가 된 끝에 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스토리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원더걸스에서 밝고 에너지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드렸는데 내 음악을 하게 되면서 어두운 부분이 많이 나오게 됐다. 팬분들도 많이 의아해했고,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감정들을 풀어나가면서 '그래서 이런 음악이 나왔구나'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추상적일 수 있겠지만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자유로운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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