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5만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했는데, 인턴이나 공공근로 등 일과성 땜질식 일자리로 보인다.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얼핏 보면 이 발언은 지난 22일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위기 대응 고용안정 특별대책’을 비판하는 것처럼 들린다. 55만개의 공공·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내용이 대책의 핵심이라서다. 하지만 이 말은 2009년 정세균 국무총리(당시 민주당 대표)의 발언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줄이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 중이었다.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자 ‘일자리 55만개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일자리 55만개 목표와 동일하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저질 일자리만 늘릴 게 뻔하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대응 고용대책과 당시 이명박 정부가 시행했던 희망근로 사업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거대한 외부 충격으로 경제가 휘청였고, 급증하는 실업률을 잡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 공공 일자리를 대거 만들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11년이 지나 비슷한 대책을 새로 짰는데도 정 총리가 당시 제기했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용 대책이 당시 민주당과 시민단체 등이 제기했던 문제 중 대부분을 그대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희망근로 사업을 비판하는 근거로 쓰였던 쟁점들을 들어 ‘55만개 공공 알바’의 문제점을 분석해 봤다.
①배우는 것도, 남는 것도 없는 단순 잡무 일자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비상경제회의 모두발언에서 ‘한국판 뉴딜’을 언급했다. 이는 1929년 경제 대공황 시기 미국의 정책을 벤치마킹해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고 IT분야 공공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단기 공공 알바 및 고용 지원 대상 중 대부분이 IT분야에 치중된 것도 이런 정책 방향에 따른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청년들이 IT분야 경험을 쌓게 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인력을 양성하고 인적 자본을 축적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청년들이 디지털 역량을 쌓기보다는 단순 잡무에 투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정부는 10만개의 비대면·디지털 청년 공공 알바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공공·공간·작물·도로 등 데이터 구축’을 예로 들었다. 인쇄물 등으로 된 행정자료를 엑셀에 입력하는 등의 일을 한다는 뜻이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공공 알바 중도포기자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09년 정부가 시행했던 희망근로사업에서는 33만6718명의 참여자 가운데 중도포기자가 8만4493명에 달했다. 이는 “저질 일자리를 만들었으니 청년들이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그만둔다”는 비판의 근거가 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의미있는 일자리를 잘 발굴할 것이니 단정하지 말라”고 항변했지만, 2018년 정부가 공공기관 수요조사를 받아 급조한 단기 일자리 중 상당수가 ‘강의실 불 끄기 알바’ 등으로 채워졌던 것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②경제위기 타격없는 고소득층 자녀도 ‘세금 알바’?
김유정 당시 민주당 의원은 2009년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저소득층의 생계 지원을 위해 실시 중인 희망근로 사업에 공무원 가족이 상당수 참여한 것은 일자리 25만개 창출이라는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책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 것”이라고 질타한 적이 있다. 경제 위기의 타격을 별로 입지 않은 공무원이나 고소득층 자녀에게까지 국민의 혈세로 알바비를 지급하는 건 명분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고용 대책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대책의 주된 취지는 코로나19 타격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이 어려워진 계층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정부가 만들기로 한 청년 아르바이트 10만개는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지 않은 공무원이나 고소득층 자녀도 지원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청년은 부모의 소득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약자고, 이들에게 일자리 경험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을 내놨다.
다만 정부는 실업자와 폐업한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일자리 30만개에 대해서는 조건부 채용을 시행할 계획이다. 소득 기준이나 실업 기간으로 기준을 정하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공공 일자리 사업은 크게 보편 지원과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뉜다”며 “취약계층 일자리는 후자에 속하기 때문에 기준을 정해 추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 쫓겨나는 민간 계약직·알바…구축 효과 발생할 듯
2009년 정부의 희망근로사업 등 근로대책이 발표됐을 당시 민주노총은 “사실상 6개월 내지 10개월짜리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인턴제로는 정부의 실업통계를 낮출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고용정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을 내놨다. “일각에서는 정부 시책에 따라 인턴을 채용하기위해 기존 계약직 직원을 내쫒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현 정부의 고용대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민간 기업의 인턴·아르바이트 등 15만 명의 단기 채용을 지원하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채용 기업으로서는 청년 알바를 실무에 쓸 수 있을 정도로 교육시킬 유인이 없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최대 고용기간이 6개월이기 때문이다.
IT업계 관계자는 “IT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청년에게 코딩 등 의미있는 수준의 업무를 시키려면 6개월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정직원들이 꺼려하는 단순 잡무를 담당할 가능성이 높고, 청년 알바가 기존에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나 계약직 직원을 대체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돈으로 알바비를 주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낮추고, 기존 근로자는 내쫓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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