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다소 진정되면서 정부의 대응 '중심축'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확산하던 '전반전'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방역'에 초점을 맞췄다면 '후반전'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융' 안정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 코로나19 자금 확대에 시름 깊어지는 기재부
22일 더불어민주당은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4인가구 100만원)을 밀어붙이겠다고 발표했다. 기재부를 의식한 듯 재정부담은 사회지도층과 고소득자에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긴급성과 보편성의 원칙하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며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부담을 경감할 방안도 함께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소득 하위 70%' 지급 입장을 고수하자 전국민 지급이라는 총선 공약을 지키면서도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추경규모는 이미 국회로 넘어온 정부의 2차 추경안(7조6000억원 규모)이 아니라 전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을 전제로 편성해야 한다고 기재부를 압박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소득 하위 70% 이하 1478만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7조6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을 확정했다. 지방정부 분담금 2조1000억 원을 합해 총 9조7000억 원을 긴급재난지원금 예산으로 잡았다.
민주당 안대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게 되면 예산 규모는 총 13조원까지 늘어난다. 조 정책위의장은 "추가증액에 대해선 추가적인 세출조정이나 국채발행 등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기재부는 미래세대 부담과 재정 여력 등의 이유로 규모와 지급 대상 확대에 반대 입장을 취했었다. 긴급재난지원금 최종 발표를 앞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렸던 당정청 회의에서도 두 시간가량 격론이 이어졌다. 당시 회의에 참여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조차 "굉장히 격렬해 싸우기 직전까지 갈 수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특히 현금성 지원에 대해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라고 했던 홍 부총리는 마지막까지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윤호중 사무총장과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소득 70% 이하가 대상'이라는 방향으로 결정이 기울자 홍 부총리는 "기록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최종 문건에는 홍 부총리의 반대 주장이 '부대 의견' 형태로 담겼다.
◆ 코로나19 초기 대응 호평 일색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
홍 부총리에 앞서 코로나19 대응으로 주목받은 인물이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다. 그의 차분하고 꼼꼼한 대응으로 코로나19가 성공적으로 잡혔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리더십 전문가인 샘 워커는 지난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연재칼럼에서 정 본부장을 언급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카리스마 있고 정치적으로 계산적인 선출직 지도자보다 전문 관료가 진짜 영웅으로 떠올랐다"며 정 본부장을 언급했다.
샘 워커는 "작은 시골병원 출신으로 부드러운 어조의 말수 적은 50대가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에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며 "일관된 솔직함,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분석, 그리고 침착함은 대중에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정 본부장을 치켜 세웠다.
이어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정 본부장은 시골 보건소로 향했고 이후 보건복지부에 특채로 들어와 20여년 만에 국내 공중보건의 관리자가 된 자타공인 공공의료 전문가"라며 "지난 1월 20일 첫 브리핑 때 입었던 깔끔한 모직 재킷을 벗고 대신 허름한 의료용 재킷을 입었고, 머리 손질도 중단했다"고 정 본부장을 묘사했다.
연이은 호평과 신규 확진자 수가 10명 이하로 감소한 상황에서도 정 본부장은 방심은 금물이라며 국민들에게 생활안전수칙 이행을 당부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유행과 완화를 반복하다가 겨울철이 되면 바이러스가 생기기 좋은 환경에서 대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또 "코로나19가 경증이나 무증상으로 진행되고 전파력도 높아 전문가들은 현재의 코로나19 유행이 금방 종식되기 어렵다고 본다"며 "감염된 이후 면역 형성 과정, 면역 지속 등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어서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코로나19 후반전…'홍남기의 시간'
정부 안팎에선 코로나19의 대응이 방역에서 금융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대응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위기관리대책회의 모두 발언에서 "2분기부터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실물·고용충격이 확대될 우려가 점증되고 있다"며 "작년 말부터 잠시 이어졌던 투자·수출 회복세가 1분기 성장세 둔화를 다소 완충해 준 측면이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1.4%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3.3%)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홍 부총리는 "2분기 성장과 고용에 가해질 하방압력을 버텨내고 내수·수출 등이 하반기 회복세를 보일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위기관리대책회의를 한시적으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로 확대 전환해 매주 목요일 회의를 열어 범정부 차원의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4~5월에는 고용 충격 대응, 위기·한계기업 지원을 집중 점검한 뒤 6월 발표할 예정인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3차 추가경정예산안 등을 집중적으로 챙기겠다"고 예고했다.
아울러 "경제 중대본을 통해 민생의 근간인 일자리부터 경기회복을 위한 한국형 뉴딜정책 추진 등 종합적인 위기 대응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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