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부산시장이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23일 자진사퇴했다. 오 시장은 지난 7일 본인 집무실에서 20대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인 오 시장은 48년생으로 올해 만 72세다.
오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용서받을 수 없다" 등 마치 신체접촉은 있었지만 추행 의도는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이에 오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부산시 공무원 A씨가 직접 입장문을 내고 반발했다.
A씨는 "오 시장 기자회견문 일부 문구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오 시장의 회견으로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고 했다.
A씨는 "그것(오 시장의 신체접촉)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며 "이를 우려해 입장문의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타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저는 이달 초 오 시장 수행비서의 호출을 받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업무 시간이었고, 업무상 호출이라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로 갔다. 그곳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광역단체장이 20대 공무원과 업무상 단독 면담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업무상 면담을 하더라도 배석자가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지적이다. 오 시장이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불러 추행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야권에선 오 시장의 범행수법이 대담했던 만큼 피해를 당한 여성 공무원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오 시장은 지난해에도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지난해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오 시장은 지난해 10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자 "소도 웃을 가짜뉴스"라며 "10억원이든, 100억원이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었다.
한편 오 시장의 전격사퇴는 A씨 요구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오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부산성폭력상담소를 찾아 피해 사실을 알렸다.
A씨는 "이달 안으로 오 시장이 공개 사과를 하는 동시에 시장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했고, 오 시장은 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요구사항을 따르겠다는 내용의 '사퇴서'를 작성해 상담소와 A씨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다음은 오거돈 부산시장 성추행 피해자 A씨 입장문
저는 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여느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입니다. 월급날과 휴가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평범’, ‘보통’이라는 말의 가치를 이제야 느낍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경위를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달 초 오거돈 전 시장 수행비서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업무 시간이었고, 업무상 호출이라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오늘 오 전 시장의 기자회견문 일부 문구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그곳에서 발생한 일에 경중을 따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습니다.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등의 표현으로 되레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습니다.
이를 우려해 입장문의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타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기자회견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갑작스레 이뤄졌습니다. 두 번 다시 이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성범죄 예방과 2차 피해 방지에 대한 부산시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
사건 직후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서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벌써부터 진행 중인 제 신상털이와 어처구니없는 가십성 보도를 예상치 못했던바 아닙니다.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 전 시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과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부산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부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사건은 ‘오거돈 시장의 성추행’입니다. 피해자의 신상정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제 신상을 특정한 보도와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 일체를 멈춰주시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특히 부산일보와 한겨레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향후 제 개인 정보를 적시한 언론 보도가 있을 시 해당 언론사에 강력 법적 조치할 것입니다.
모든 일이 부디 상식적으로 진행되기만을 바랍니다.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