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쩍않던 강남권 전세값, 매물 쏟아지자 바로 '뚝'

입력 2020-04-25 07:43   수정 2020-04-25 07:45


강남권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집값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는데다 입주물량이 꾸준히 나오면서다. 연초에는 이러한 분위기임에도 전셋값은 강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강남 집값의 약세가 길어지고 있고, 쏟아지는 매물들의 호가가 낮아지면서 전세값을 끌어내리고 있다.

이달 초 기준 서울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은 일주일 사이 0.01% 하락했다. 10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내림세로 돌아섰다. 서울권 전세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최고 인기지역으로 통하는 강남권 전세값이 내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송파구 주변 전세 물량이 늘어난 점이 요인이다. 송파구 최대 규모 단지인 헬리오시티에서 2년 전세 만료를 앞둔 물건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다 인근 강동구에서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굳건하던 강남권 전세가가 결국 물량 폭탄에는 견디지 못한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을 억지로 누르기보단 공급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가격 안정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송파 전셋값 주춤

25일 한국감정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송파 아파트 전세 가격은 이달 초 0.01% 떨어진 후 0.00~0.01% 보합권에 갇혀있다. 강남권 아파트 매매를 강력하게 규제한 ‘12·16 부동산 대책’ 직후 전셋값이 0.35% 뛰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꺾였다.

신천동에 위치한 ‘파크리오’ 전용 84㎡ 전세는 이달 초 8억2000만원에 계약을 마쳤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최대 11억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지만 한달도 지나지 않아 가격이 2억~3억원 떨어졌다. 잠실동 ‘리센츠’ 역시 전세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말 10억5000만원에 거래되던 전용 84㎡ 전셋값은 최근 9억원에 실거래됐다. 호가는 8억5000만원까지 내렸다.

◆파크리오에서 헬리오시티로, 또 강동구로 세입자들 이동


9510가구에 달하는 대단지 가락동 ‘헬리오시티’에서는 전세 재계약 물량이 쌓이면서 송파구 일대 전세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이달들어 헬리오시티 전셋값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가락동 일대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헬리오시티 전용 84㎡ 전셋값은 올해 들어 최대 3억원 넘게 가격이 내렸다. 이 주택형의 전셋값 지난 1월까지만 하더라도 10억3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7억원에도 계약을 할 수 있다.

인근 지역인 강동구에서 대규모 단지가 줄줄이 입주하면서 수천가구의 전세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강동구에선 지난해 말부터 고덕 그라시움(4932가구), 롯데캐슬 베네루체(1859가구), 고덕센트럴아이파크(1745가구), 고덕 아르테온(4066가구) 등 반년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1만2000여가구 이상 입주했다. 세입자들이 송파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파트 전세 가격이 저렴한 강동구로 이동하면서 송파구 일대 전세 수요가 줄었다.

송파구 T공인 대표는 “강동구에선 전용 84㎡ 새 아파트 전세가는 대략 4억원 중반대~5억원 선이면 구할 수 있다”며 말했다. 이어 “비싼 송파구 전세가에 부담을 느끼는 세입자들이 올 초부터 강동구로 많이 옮겨 가면서 거래 자체가 둔화됐다”며 “파크리오 전세 수요자는 헬리오시티로, 헬리오시티 수요자는 강동구 아파트로 옮겨가면서 송파구 전세가가 연쇄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세가 안정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공급 확대”

지난해부터 쏟아지던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잡기 힘들었던 강남권 전세가격이 움직이면서 전문가들은 “결국 부동산 시장에서 정책은 시장 기능을 이길 수 없다”며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시장 원리에 따라 가격이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정부는 강남 4구 등 특정 지역의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보유세 인상,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활 등 규제만 쏟아냈다.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었다. 그 결과 매매 거래가 차단돼 오히려 전세가가 오르면서 100% 실수요자라고 할 수 있는 세입자들의 부담만 가중됐다.

여전히 전세 품귀현상에 시달리는 강남지역 전세가는 이달 0.08~0.10%대 높은 주간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


주변 지역에서 양질의 주택 공급이 활발해지자 송파구 전세 가격이 안정을 찾은 것을 두고, 주택 수급 상황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알아서 조정하는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과도한 정부 개입을 지양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에 공급을 터주는 것 만큼 시장 안정에 효과적인 대책이 없다”고 강조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도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강남권은 사실상 재건축 재개발로 주택 물량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당분간 재건축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향후 공급이 늘 수 있을 지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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