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증권가에서 '섭외 1순위'였던 사경인 회계사(45·사진). 5000 시간 이상 강의를 하고 각종 라디오와 팟캐스트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동시에 <재무제표 모르면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마라>라는 베스트셀러로 유명세를 떨쳤다. 증권사나 금융사 직원이라면 그의 강의를 듣는 게 필수코스일 정도였다.
그런 그가 돌연 사라진 건 약 1년 전. 고정적인 모든 일을 내려놓고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홀가분하게 그가 떠날 수 있었던 까닭은 경제적 자유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일은 없어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을 만들었고 이러한 자신의 경험과 회계지식, 다독(多讀)의 힘으로 '부자방정식'을 만들어 냈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책은 <진짜 부자 가짜부자>(더클래스)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처럼 부자가 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를 최근 서울에서 만났다.
Q. 제주도에는 언제부터 내려갈 준비를 했나. 정말 일을 안하고 있는 상태인가.
"4~5년 전에 제주도에 땅을 사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둘째가 생기는 바람에 바로 가지는 못하다가 돌이 지나면서 이사를 했다. 첫째 아이를 서귀포 근방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피스텔에서 공부를 하거나 유튜브 촬영을 하는 게 일상이다. 아이 하원 시간에 집으로 데려 오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제주에 오니 새벽 5시께에는 일어나고 잠은 늦어도 10시에 잔다. 아침형 인간이 다됐다."
Q. 주식하는 회계사로 유명세를 탔는데, 정작 회계업무는 안한다는 건가?
"주변 회계사 친구들 중에 회계법인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비율로 보면 30% 정도인 것 같다. 대부분은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회계지식이 다른 일을 하기 위한 바탕으로는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Q. 어떻게 경제적 자유를 실천했는지 궁금하다.
"인세나 배당 등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시스템 수익'이다. 별다른 노동의 투입이 없이 자동으로 얻는 건데, 이를 우리 가정 사정에 맞춰놨다. 생활에 필요한 나머지 시스템 수익은 배당주를 통해 채웠다. 노동을 하지 않는 소득을 흔히 '불로소득'이라며 좋지 않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노동을 신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불로소득을 추구한다."
Q. 불로소득이라고 하면, 정부에서 투기로 지적한 부동산이 생각난다. 과거에는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일하다보면 돈 벌수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
"노동소득은 주업이니 중요하고 자본소득은 부업이니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자의 길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노동소득에만 기댄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한다. 자신의 소득을 분류하고, 자산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진짜 나의 자산이 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는 개인 소득을 △시스템수익(노동 투입없이 얻는 소득) △반자동수익(주기적인 노동투입이 필요한 소득) △노동수익(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소득) △투자수익(투자자산의 가치 상승으로 얻는 소득) △기타 소득(이상 4가지에 해당되지 않는 소득) 등으로 구분했다.
부동산이나 주식이냐와 같이 '자산'을 따지기에 앞서 이를 통해 얻는 '소득'을 위의 4가지 분류에 넣으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시스템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게 어떤 자산인지 구분이 가고, 부족하다고 본다면 이를 늘려가라는 조언이다. 예를 들어 주식은 투자자산이라고 생각할테지만, 배당주 투자는 주기적으로 배당이 나오기 때문에 시스템 수익을 가져다주는 '시스템 자산'으로 분류한다. 부동산에서 전세보증금은 내 자산이긴 하지만, 꼬박꼬박 수익이 들어오는 게 아니니 남에게 맡겨둔 '예치 자산'일 뿐이라는 얘기다.
Q. 자산부터 시작하지 말고, 수익부터 생각하라는 얘기가 흥미롭다. 쉽게 뭐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달라.
"돈을 외면하지 말고 돈을 공부해야 한다. 막연하게 일만해서 부자가 될 수는 없다. 진짜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깨달음’과 ‘방향 설정’이다. 자산과 부채, 수익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자의 기준을 바로잡은 뒤 부의 목표를 세우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결혼을 했다면 부부가 목표설정과 점검을 함께 하는 게 좋다."
Q.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게 있을까?
"회계 원리 시간에 배우는 몇가지 방정식이 있다. 간단한 식인데, 예를 들면 이렇다. '자산-부채=자본', '수익-비용=이익'이다. 간단하지만 이 식만으로도 기업이 가진 게 어느정도인지 얼마를 벌어서 얼마를 남기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식을 개인에 맞춰 변형하면 '부자 방정식'이 된다."
Q. 투자의 대부분이 주식이라고 했는데, 최근 주식시장 급등락장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다.
"시스템 수익을 기본으로 깔아놨고, 빚은 거의 없는 재무상태를 기본으로 갖고 있었다. 주식투자에 기회가 오면 레버리지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는데, 지난달이 기회였다. 코스피 지수가 내려가는 고비마다 투자했다. 다른 개인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 흔히 시장이나 기관에서 개인투자자를 '개미'라고 부르는데, 이는 개인투자자들을 폄훼하면서 생긴 단어라고 본다. 요즘 개인투자자는 개미의 수준을 넘었다. 제도권 못지 않게 스마트하고 분석력도 뛰어나다."
Q.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어디에 투자했는가? 삼성전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삼성전자는 투자하지 않았다. 내가 잘 모르는 주식이기 때문이다. 주식에 대부분의 자산(약 80%라고 한다)이 들어가 있는데, 투자하는 종목은 10개 이내다. 주식시장의 전체 흐름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증권사에서 강의를 할 때에도 '전망'은 절대 하지 않았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대응'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대응을 잘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해당 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수십개의 종목을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Q. 종목이 궁금하다. 알려달라.
"잘 아는 회사에 투자해야 한다. 이번에 비중을 늘린 건 고려신용정보다. 불황이나 경기가 안 좋았을때 오히려 좋아지는 회사다. 평소에도 배당을 많이 주던 종목이어서 주가가 많이 빠지는 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비중을 줄인 종목은 가스주다. 가정용만 아니라 산업용 가스도 공급하는 회사다. 유가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가스를 대체하기가 쉬워졌다. 가스주들은 당분간 힘을 못 낼 것 같다."
그는 주식투자에 있어서 '자신만의 무기'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행추천을 예로 들기도 했다. 주변에서 '어디 놀러가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장흥'을 추천한다고. 장흥은 자신의 고향이다보니 어디가 좋은지 어디가 맛있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다. 유명 관광지를 추천하는 건 삼성전자를 추천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Q. 그래도 증시가 급락했을 때에는 심적으로 힘들지 않았나?
"투자를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시장은 어차피 내가 예측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앞서도 얘기했듯 최선의 대응을 하려고 했다. 이번 폭락 때 투자를 하면서는 '앞으로 4~5년간 투자할 걸 미리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번 고비를 지나고 나서 몇년 후에는 금융위기를 회상할 때처럼 '아! 그 때가 기회였구나'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본다."
Q. 동학개미운동도 긍정적으로 본다는 얘기인가?
"성공적으로 투자를 했으면 좋겠고, 이번에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주식에서 좋은 투자경험이 있다면, 자신감이 쌓이고 또 투자를 하게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이나 기업에도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동안 부동산에 돈이 몰린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 벌고 좋은 경험을 얻었으니 계속 투자하는 거다."
Q. 부동산 투자나 자산은 별로 없는 건가?
"제주도 집과 땅이 전부다. 그동안 부동산 공부를 제대로 안했으니 당연한 거다. 어떤 투자건 자신과 맞아야 하는데, 부동산을 여러모로 감내해야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주식은 10만원으로도 가능하지만, 부동산은 자신의 돈도 많이 들어가고 레버리지(대출)도 필요해서다. 그래서 부동산은 무조건 싸게 사야 한다고 생각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경매에 관심을 갖고 있다."
Q. 투자자와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은 신경을 안쓰고 일만 부지런히 해왔다. 하지만 내 재정상태를 엉망이었고 집이든 차든 뭐를 사려면 빚부터 내야했다. 이러한 후회와 경험을 토대로 이제는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여유로운 삶을 꾸리고 있는 부자가 됐다. 우리는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돈을 버는 데 할애하면서도 정작 돈에 대한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나를 부자로 만들어준 건 '돈에 대한 집착'이나 '욕망을 억누르는 절약'이 아니다. 아끼느라 많은 것을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절약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 많지 않은 소득임에도 걱정없이 살 수 있다. 이게 돈을 공부하면 가능한 일이다."
글=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사진·동영상= 최혁 한경닷컴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