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 인체 주입'? 역풍 맞은 트럼프의 '리얼리티 쇼'식 코로나 대응[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입력 2020-04-26 15:00   수정 2020-07-25 00:0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리얼리티 쇼'식 코로나 대응이 거센 역풍을 맞았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던 백악관 코로나 태스크포스 브리핑을 25일(현지시간) 돌연 취소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억제를 위해 '인체에 살균제 주입을 검토해보라'는 황당한 발언에 언론과 정치권에서 비난이 빗발치면서다. 트럼프 진영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TV 브리핑이 올 11월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살균제 발언' 어떻게 나왔나




발단은 23일 백악관 코로나 태스크포스의 정례 브리핑였다. 빌 브라이언 국토안보부 과학기술국장은 실내 온도를 화씨 70∼75도(섭씨 21.1∼23.8도), 습도를 80%로 맞추면 바이러스가 물체 표면에서 2분밖에 못버텼다는 정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바이러스가 습기와 더위에 노출됐을 때 빠르게 죽는다"고 했다. 이어 "표백제는 5분 안에 바이러스를 죽이고, 살균제는 30초 안에 죽인다"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이언 국장의 발표가 끝나자 "우리 몸에 엄청난 양의 자외선을 쪼이거나 주사로 살균제를 주입하면 어떨까"라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브라이언 국장이 독성이 있는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하는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미 늦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살균제 주입' 발언은 미 언론과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놨다.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위터에 "내가 이 말을 해야 한다는 걸 믿을 수 없다"며 "제발 표백제를 마시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주간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사람들에게 라이솔(살균제)을 폐에 주입하라고 한다"고 했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미 공영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TV에 돌팔이 약장수가 나온 것 같다"고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CNN도 "도널드 트럼프의 서부 개척시대식 떠돌이 약장수 쇼를 보라"고 꼬집었다.

파문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나는 당신 같은 기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비꼬는 투로 질문한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백악관도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무책임하게 전후 맥락을 무시하고 부정적인 헤드라인을 내보냈다"고 언론 탓을 했다.



◆트럼프 "브리핑 할 가치 없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후폭풍을 무시하진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살충제 발언' 다음날인 24일 정례 브리핑을 22분만에 끝냈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보통 땐 브리핑이 1시간~1시간반 이상 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5일엔 브리핑을 아예 열지 않았다. 대신 트위터로 '뒤끝'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주류 언론이 적대적 질문만 하고 진실과 사실을 정확히 보도하길 거부한다면 백악관 기자회견을 하는 목적이 뭔가"라며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썼다. 민주당을 향해서도 "나는 전염병 대유행이 거짓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았다"며 "나는 주류 언론과 협력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민주당이 '거짓'이라고 말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브리핑 때 객관적 사실보다 리얼리티 쇼처럼 즉흥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해 신뢰성을 깎아먹고 있으며, 이는 11월 대선과 총선에 도움이 안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그동안 백악관 내부와 외곽의 측근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일 브리핑 참석을 중단하라'고 조언해왔다고 보도했다. 미 정치전문 폴리티코도 공화당과 백악관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매일같이 TV에 나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트럼프 '과학'보다 '감' 의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된건 이번 '살충제 주입'이 처음이 아니다. 그 전부터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라리아 예방·치료제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별다른 근거도 없이 코로나 사태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한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을 꺼낸 이후 이 두 약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25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코로나 관련 효능을 언급한 지난달 19일 소매약국에서 두 약의 처방 규모가 평일 평균보다 46배나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게임체인저' 발언을 한 지난달 21일엔 두 약의 처방건수가 평일 평균보다 114배나 많았다. 이달 들어서까지도 이들 약품 처방은 평소보다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미 식품의약국(FDA)은 24일 두 약물에 대해 심각한 심장 박동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병원이나 임상 시험에만 쓰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도 23일 밤 CNN에 출연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 환자의 회복률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욕시 22개 병원이 시 보건부 후원으로 약 600여명의 코로나 환자에게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투약했는데,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데이비드 홀트그레이브 뉴욕주립대 학장도 “통계학적으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투약한 코로나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간의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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