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완성차업체 폭스바겐은 27일 볼프스부르크 본사 외벽에 폭스바겐 로고가 팩맨처럼 옆으로 누워 바이러스를 먹어치우는 모습을 담은 대형 그래픽을 띄웠다. 최대 생산기지인 볼프스부르크공장이 이날 5주 만에 생산을 재개한 것을 자축하는 의미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도 각국 정부의 ‘봉쇄 완화’에 맞춰 대형 자동차 회사들이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빅3’도 다음달 4일을 기점으로 미국 공장에서 생산 재개에 나설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됐던 글로벌 경제가 탈출구를 찾아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자동차 공장 작업 동선 재설계
세계 자동차산업은 코로나19로 생산과 판매 양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2월 코로나19 진원지인 중국 우한이 봉쇄돼 글로벌 부품 공급사슬이 손상됐고, 3월부터는 유럽과 미국 주요 공장이 직원 감염 우려로 휴업에 들어갔다.
각국의 이동제한 조치에 소비심리도 얼어붙었다. 3대 자동차시장인 중국, 미국, 유럽의 지난 1분기(1~3월) 신차 판매는 990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30% 급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경제활동을 먼저 재개한 중국이 4월부터 회복세를 보인 데 이어 미국과 유럽도 5월부터 봉쇄 완화와 함께 자동차를 비롯한 소비재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JD파워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국 50개 주 가운데 24개 주가 자동차 매장 영업을 허가했으며 앞으로도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폭스바겐은 이날 연간 생산량 85만 대 규모의 볼프스부르크공장을 돌리기 시작한 데 이어 이번주 러시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에서 생산을 재개할 계획이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도 일부 직원을 출근시키면서 생산 재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독일 완성차업체들은 5~6주 동안 휴업하면서 직원 간 최소 1.5m 간격을 유지하도록 작업 동선을 다시 설계하고, 출퇴근 동선도 직원들이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일방통행 방식으로 바꿨다.
이탈리아의 피아트크라이슬러(FCA)도 이날 이탈리아 중부 세벨공장을 가동률 70% 수준으로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도요타자동차와 르노는 프랑스 공장을 이번주 안에 재가동할 계획이다.
미국에선 GM과 포드, FCA 등 ‘빅3’를 비롯해 현대·기아자동차, 폭스바겐, 도요타 등 대부분 완성차업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사회적 거리두기’ 가이드라인 시한(4월 말) 종료 후 첫 월요일인 5월 4일을 생산 재개 시점으로 잡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공장이 있는 전기차업체 테슬라도 생산 재개를 위해 이번주 일부 직원에게 일터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국 공장들은 열감지기와 마스크 등 방역장비를 구비하는 한편 작업 동선을 재편하고 가동률을 낮추는 등의 예방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자동차노조(UAW)는 “전 직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며 생산 재개에 반대했다.
완성차업체들이 생산 재개를 서두르는 것은 원재료인 철강·화학 등에서 시작해 3~4단계 부품업체를 거치는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자동차 공장의 생산 중단으로 부품업체들이 무너지면 향후 자동차시장이 회복돼도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스페인도 봉쇄 완화 시동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코로나19 ‘핫스폿’으로 꼽혔던 지역에서 확산세가 다소 진정되면서 봉쇄 완화 조치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26일 하루 사망자 수는 모두 한 달여 만에 200명대로 줄어들었다. 신규 확진자 수도 하루 20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다음달 4일부터 상당수 기업과 공장의 운영을 정상화하는 봉쇄 완화 정책을 26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소규모 가족 방문, 15명 이내 규모의 장례식, 식당의 음식 포장 판매 등이 가능해진다. 6월부터는 식당 내 식사도 허용할 예정이다. 다만 학교 휴업은 8월까지 유지할 계획이다.
지난달 14일부터 강력한 봉쇄령을 시행해온 스페인은 이달 26일부터 어린이들의 외출 제한을 완화했다. 14세 이하 아동이 부모와 동행해 하루 한 시간, 거주지 1㎞ 이내에 외출할 수 있도록 했다. 스페인 정부는 전국적 봉쇄조치 완화 방안을 28일 내놓을 예정이다.
영국에서는 27일 업무에 복귀한 보리스 존슨 총리가 봉쇄령이 만료되는 다음달 7일 이전에 이동·영업제한을 완화할 수 있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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