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수합병(M&A) 하면 성공 사례만을 떠올리기 쉽다. 수천억원 적자를 내던 하이닉스를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 인수해 실적 1위 계열사로 탈바꿈시킨 최태원 SK 회장, 2005년 취임 후 24건의 M&A를 통해 기업가치를 40배 이상 끌어올린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난관을 뚫고 인수한 기업들을 ‘백조’로 탈바꿈시킨, 대표적 M&A 성공 스토리다.
반면 ‘불발’된, 혹은 ‘포기’한 M&A가 ‘정말 잘한 결정’이었던 사례도 많다. 2008년 11월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했던 한화그룹은 금융위기가 본격화하자 이듬해 인수를 포기했다. 3150억원의 이행보증금을 날릴 것을 각오한 김승연 회장의 결단이었다. 그런데 2015년부터 중국발(發) 공급 과잉에 따른 조선업 위기가 이어지면서 이 결정은 뒤늦게 재조명받았다. 한화는 대신 삼성과의 화학·방위산업 분야 ‘빅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2008년 매물로 나온 리먼브러더스 인수 직전까지 갔던 산업은행이 그해 9월 막판에 포기한 것도 전화위복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은 내부에서 “세계적 투자은행(IB)으로 거듭날 기회를 걷어찼다”며 안타까워했던 딜이었다. 그러나 이후 리먼 아시아·유럽·중동사업부문을 인수한 노무라증권이 2010년대 중반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당시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이 증명됐다.
M&A는 ‘종합예술’로 통한다. 회계·법률은 물론 기업의 문화·역사에 대한 연구가 총동원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인수’로 결론이 난 성공 사례들이 회자되지만 M&A 세계에는 이런 ‘포기의 미학(美學)’도 있는 셈이다. HDC현산과 제주항공은 평상시라도 어려웠을 선택의 순간을 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 맞닥뜨렸다. 이들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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