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눈치보느라…'대화'하자면서 경영계는 안중에 없는 정부

입력 2020-05-03 17:39   수정 2020-10-14 15:51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주요 축 중 하나인 경영계는 배제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양대 노조와만 대화할 뿐 경영계의 의견 수렴은 안중에도 없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금 추진되고 있는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대화가 아니라 노정 협상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공식 요구 내놓지 못하는 경영계

경영계는 노·사·정 모두가 참여해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기업은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으며 근로자도 실업대란에 직면했다는 판단이다. 경영계는 기업들이 고용 유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한편 노조도 임금 동결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임금 삭감도 받아들이는 대타협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지난달 20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경영계 대표들에게 사회적 대화 협조를 구했고, 사회적 대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내놓지 않고 있다. 경총 등이 지난 3월 법인세 인하 등을 요구했다가 노동계와 정치권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이후 ‘꿀먹은 벙어리’ 신세가 됐다는 게 경영계의 자평이다.

경영계는 정부가 기존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제쳐 놓는 것에 대해서도 못마땅해하고 있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이 총선 직후인 지난달 17일 경사노위 틀을 벗어난 ‘원포인트 노사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이후 정부가 보이는 일련의 움직임이 민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한 포석이라고 경영계는 보고 있다. 원포인트 협의체가 구성되더라도 경영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위원이 전체의 20% 수준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노조에 휘둘리는 정부

한노총은 한노총대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까지 노동계를 대표해 경사노위의 한 축을 구성해왔으며, 3월에 이미 ‘코로나19 위기 극복 노사정 합의’를 선언했는데 정부가 왜 뒤늦게 민노총 편을 드느냐는 것이다. 한노총 관계자는 “민노총이 원포인트 협의체 구성을 요구한 날 저녁 총리와 한노총 위원장과의 만찬 자리에서도 그런 얘기가 전혀 없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나중에 원포인트 협의체에 들어오라고 한다고 덥석 응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한노총은 지난달 29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노·사·정 대화 참여 방식을 놓고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회의 안건은 △기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에서 논의 △민노총이 제안한 ‘원포인트 노사정 협의체’ 참여 △노·사·정 외 시민단체·종교계도 참여하는 노·사·민·정 대책회의 구성 등 세 가지였다. 공식적으로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후 위원장에게 결정을 위임했지만 회의에서는 노·사·민·정 대책회의를 추진하는 안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민노총 제안도 받아들이면서 대화의 판을 키우자는 역제안으로, 대화 주도권을 갖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처음으로 민노총에 ‘제1노총’ 자리를 내준 한노총으로서는 “민노총에 끌려가선 안 된다”는 조직 내 여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여권은 민노총과 한노총의 눈치를 보며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 노사 관계 담당자들은 한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개최 전날인 지난달 28일 한노총 산별대표자 등에게 참석 여부와 의견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노총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한노총과 함께 고위급 정책협의회를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SNS를 통해 “정부도 노동자, 기업과 함께 혼신을 다해 일자리를 지키고 우리 경제가 상생으로 활력을 찾고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동계도 사회 주체로서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으로 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뜻과 달리 정부는 양대 노총의 생각만 살피려 하고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갈 뜻과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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