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 국민 고용보험' 논의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것들

입력 2020-05-03 18:10   수정 2020-05-04 00:31

실업급여 지급대상을 모든 국민으로 확대하자는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청와대가 “전 국민 고용보험을 갖추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의 과제”라는 근로자의 날(1일) 메시지를 냈고, 기획재정부는 다음날 ‘고용제도 혁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비정규직,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 밖에 있는 이들을 보호대상으로 끌어들이자는 구상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의지에 비춰볼 때 오는 10일 대통령 취임 3주년에 맞춰 구체안이 나오며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관측된다. 노·사·정의 이른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기구’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부실이 드러난 고용보험을 시급히 손봐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당위론을 넘어 어떻게 효율적인 고용안전망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임의 가입으로는 안 된다”고 언급한 청와대가 ‘의무 가입’을 밀어붙이는 상황이다. ‘해고 금지’가 실업대책이 될 수 없듯이, 가입 강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선결과제 해소가 중요하다. 가입대상을 ‘전 국민’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어디까지 할 것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고용보험은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돼 전체 근로자의 절반 정도만 대상이다. 따라서 소외된 비정규직이나 특고, 새로 부상하는 플랫폼 노동자나 프리랜서 등에 대한 합리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하지만 대상을 자영업자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400여만 명의 ‘고용원 없는 영세 자영업자’는 근로자가 아니어서 가입 강제가 힘들다. 또 매출 축소신고가 잦고 정확한 소득 파악이 힘들어 봉급생활자와의 형평 문제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도 자영업자를 의무가입시키는 나라가 거의 없는 실정에서 가입 강제는 실업급여를 노린 폐업 조장 등의 여러 역효과를 부를 가능성도 높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재원충당 방안이다. 고용보험은 지금도 큰 적자를 내고 있어, 취약계층으로 가입 대상이 확대된다면 눈덩이 적자가 불가피해진다. 법적 고용주가 없는 상황에서 보험금 수입을 더 확보할 방안은 결국 재정밖에 안 남는다. 하지만 이미 취약해진 재정이 더 부실해진다면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의 메가톤급 후폭풍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민노총은 보름 전 정부에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를 제안하며 재원 확보방안으로 ‘재정 투입’과 ‘대기업 누진과세’를 강조했다. 하지만 여러 경제주체의 타협이 전제되지 않는 고용보험 전 국민 확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억대 연봉자가 즐비한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거대노조 정규직 근로자의 양보가 필수적이다. 생산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이들이 연봉 동결 등의 양보안을 제시한다면 기업의 기여능력을 확대하는 선순환도 가능하다. 정부도 애꿎은 봉급생활자나 기업 부담을 무리하게 늘리기보다 노동시장 강자들의 고통 분담을 설득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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