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작가들인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이 각자의 고유한 감각과 개성으로 ‘할머니’를 그려낸 단편을 묶어 소설집을 냈다.
《나의 할머니에게》(다산책방)는 우리 곁에 언제나 있어 왔지만 제대로 응시된 적 없던 할머니 존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작가들은 사회 곳곳에서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시대를 충실히 살아낸 우리 시대 소중한 어른으로서 ‘할머니’의 이름을 불러낸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여자 어른’으로서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집안에선 남편에게,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받지 못한 채 고단한 세월을 견뎌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2019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윤성희의 ‘어제 꾼 꿈’은 남편 제삿날에도 연락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서운해하면서도 언젠가 손주에게 구연동화를 해주는 좋은 할머니가 되길 빌어보는 화자의 회한에 가까운 주문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2020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는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인생의 특별한 서사를 꿈꿨던 할머니의 고독과 외로움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으로 치환해낸다.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강화길의 ‘선베드’는 치매에 걸려 손녀를 완전히 잊게 될 할머니의 무해한 사랑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2018년 소나기마을문학상 황순원신진상을 받은 손보미의 ‘위대한 유산’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엄청나게 큰 집을 처분하기 위해 10년 만에 나타난 ‘나’가 어린 시절 가정부로 일했던 아주머니와 만나면서 겪는 사건을 긴장감 있게 전개한다.
2018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최은미의 ‘11월행’은 수덕사로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일본서점대상 수상작 《아몬드》작가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은 노인 문제, 세대 갈등, 이민자 문제 등을 공상과학(SF)적으로 상상한다.
작가들은 각 소설에서 ‘가족의 의미가 흐려져가는 시대에서도 부모를 대신해 우리를 키우고 보듬었던 존재’로서 할머니를 복원해낸다. 소설가 오정희는 ‘추천의 글’에서 “작가들은 할머니들의 곰삭은 향기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모습과 인간 존재의 신비를 전해준다”며 “그들의 우여곡절과 슬픔, 상처로 인해 인간이란 이렇듯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점도 깨닫게 해준다”고 평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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