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지원엔 반드시 그만한 대가가 따릅니다.”
7일 조합설립을 앞둔 서울의 한 재개발구역 추진위원장은 “‘공공재개발’은 독이 든 사과와 마찬가지”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서울 도심 주택공급을 촉진시키기 위해 인센티브를 꺼냈지만 조합이 포기해야 할 이익도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로 도심 공급이 확 늘어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조합 ‘시큰둥’
국토교통부가 전날 발표한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은 공공재개발을 도입하는 게 골자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조합과 함께 재개발사업의 시행자로 참여하는 대신 분양가 상한제 적용 배제와 용적률 제한 완화 등의 혜택을 준다.
그러나 초기 단계 재개발구역 대부분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계획한 가구수 가운데 조합원분을 제외한 물량의 절반을 공공임대주택으로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1000가구를 계획한 재개발구역의 조합원이 700명이라면 나머지 300가구 가운데 150가구를 임대주택으로 지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일반분양분이 줄어드는 만큼 조합의 수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합설립을 앞둔 강북 도심의 한 재개발구역 추진위원장은 “일반분양 수입을 통해 사업을 이끌어가는데 여기서 절반이나 떼가겠단 발상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임대 물량이 늘어나면 사업성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사업을 재추진해 10여 년 만에 구역지정을 앞두고 있는 A구역의 추진위원장은 “세부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정부 발표대로라면 조합원들에게 절대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사업기간 단축 또한 보장된 게 아니어서 대부분 ‘노 땡큐’라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파격적으로 내건 분양가 상한제 적용 예외 조건도 사업 참여 유인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한제를 피하더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재개발 대상 주택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서울 마포구 B공인 관계자는 “초기 단계 재개발구역이 일반분양을 하게 될 7~10년 뒤의 상한제 존폐 여부도 가늠할 수 없어 아직은 막연한 청사진일 뿐”이라며 “조합 단독으로 시행하던 구역들의 집행부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공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성남 공공재개발도 20년 걸려
공공이 시행에 참여하는 형태의 재개발사업은 2000년 경기 성남에서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이 침체하자 LH가 사업을 포기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해가 돼서야 분양한 금광1구역(‘e편한세상금빛그랑메종’)과 중1구역(‘신흥역하늘채랜더스원’) 등이 당시부터 공공과 손잡고 사업을 추진하던 곳들이다. 국토부가 이번 발표에서 사업 소요 기간을 5년으로 단축시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주택 경기 여건에 따라 성남 재개발구역 같은 일이 얼마든 재발할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우선 사업이 오랫동안 멈춰선 구역들이 참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조합을 구성하지 못한 사업장이 서울에서만 102곳으로 파악된다”며 “초기 단계 사업장이 주 대상이겠지만 사업 진도가 많이 나간 구역 또한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에 탄력을 받는 재개발구역이 늘어도 문제다. 정부가 내건 용적률 완화 등을 미끼로 삼아 신축 빌라를 지어 파는 ‘신축 쪼개기(지분 쪼개기)’가 성행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신축 쪼개기란 재개발구역의 단독주택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을 지어 분양대상자를 늘리는 수법이다. 조합원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사업성은 낮아진다. 분양자격을 얻지 못하고 현금청산하면서 큰 투자손실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마천동 C공인 관계자는 “재개발 바람을 넣으려는 빌라업자들이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일단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한 뒤 필요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2022년까지 공공재개발을 통해 2만 가구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오는 9월 공모를 통해 시범사업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은 어둡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벼랑 끝에 몰린 몇몇 사업장을 제외하면 참여가 제한적일 것”이라며 “의미 있는 공급을 이끌어내려면 조합의 수익성에 대한 보다 과감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