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를 할 때 꼭 배우는 문장이 있다. 바로 ‘Keep the change(잔돈은 가지세요)’다. 쓸 일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한국과 달리 ‘팁’을 주는 게 일상화된 영미권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택시요금이 8.50달러가 나왔는데 10달러를 냈다면 이 문장을 말하는 순간 잔돈은 팁이 된다.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우리 일상에서도 이 문장을 쓸 수 있다. 대상은 택시기사가 아닌 내 지갑이다. 금융회사들은 거스름돈으로 투자하는 ‘잔돈금융’ 상품을 내놓고 있다. 동전을 하나 둘 돼지저금통에 넣다가 꽉 차면 배를 갈라 은행으로 가져가 지폐로 바꾸는 건 옛말이다. 이제는 돼지저금통으로 펀드에 투자를 하거나 미국 스타벅스 주식을 살 수도 있는 시대다.
카카오페이는 지난달 28일 ‘동전 모으기’ 서비스를 출시했다. 카카오페이로 결제할 때 1000원 미만의 금액을 알아서 계산해 미리 지정해둔 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현금을 충전하는 ‘카카오페이머니’ 뿐만 아니라 연동한 신용·체크카드로도 할 수 있다. 설정 방법은 간단하다. 원하는 펀드 상품을 고르고 ‘자동 투자’를 선택하면 끝난다.
카카오뱅크의 ‘저금통’도 대표적인 잔돈금융 상품이다. 평일 밤 12시를 기준으로 이용자가 지정해둔 입출금계좌에 있는 1000원 미만의 잔돈을 알아서 모아준다. 실제 돼지저금통처럼 얼마가 쌓였는지 정확한 액수는 확인할 수 없다. 10만원을 모두 모았을 때 귀여운 ‘라이언’ 캐릭터가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 뿐이다. 기업은행의 ‘IBK평생설계저금통’도 잔돈금융을 겨냥했다. 카드 사용시 결제 금액의 1만원 미만의 잔돈이나 1000원 단위로 선택한 정액금액이 선택한 적금이나 펀드 계좌로 실시간 이체된다.
차곡차곡 모은 잔돈으로 해외주식을 투자할 수도 있다. 신한카드는 ‘해외주식 소액투자 서비스’를 운영중이다. 아마존, 애플, 스타벅스 등 해외 유명 주식을 0.01주 단위부터 살 수 있다. 방식은 두 가지다. 첫번째는 카드를 쓰고 남은 1000원 혹은 1만원 미만의 돈을 투자하는 ‘자투리 투자 방식’이다. 최소 100원부터 2만원 사이의 금액을 미리 설정하면 결제할 때마다 해당 금액이 자동으로 인출돼 투자금으로 쓰이는 ‘정액 투자 방식’도 있다.
잔돈금융 서비스는 팁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2012년 창업한 스타트업 ‘에이콘스’가 주인공이다. 카드 결제시 발생하는 잔돈을 자동으로 펀드나 주식 등에 투자해주는 서비스를 처음 내놓았다. 잔돈 금융 상품들은 출시되는 족족 화제를 모았다. 현재 에이콘스 사용자는 450만명으로 관리하는 자산이 12억달러(한화 약 1조4700억원)가 넘는다.
한국에도 잔돈금융 전용 앱이 있다. 지난해 출시된 ‘티클’이다. 앱에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결제할 때마다 1000원 미만의 금액이 자동으로 삼성증권, KB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제휴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계좌에 쌓인다. CMA 계좌에 쌓인 돈이 1만원이 되면 개인간(P2P) 금융업체 데일리펀딩을 통해 부동산이나 기업 매출채권 등의 투자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
‘짠테크’의 끝판왕인 잔돈금융의 타깃은 밀레니얼 세대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큰 돈을 ‘마음 먹고’ 투자하는 재테크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새 없어져도 모를 잔돈을 알아서 모아서 투자해준다? 편리하고 빠른데 부담도 적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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