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넷플릭스서 동시 개봉, 영화판 질서 바꾼 '창조적 파괴'…그 뜨거운 감자의 시작이 옥자

입력 2020-05-08 17:37   수정 2020-05-09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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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2017년 개봉 당시 화면 속보다 바깥 문제로 더 주목받은 작품이다. 옥자는 한국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온라인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 공개됐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최초의 넷플릭스 제작 영화이기도 하다. 옥자 이전까지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모두 영화관에서 최소 2~3주 동안 먼저 상영된 작품이었다. 영화관 상영을 마친 뒤 인터넷TV(IPTV) 유료 공개 상품이 되고, 이후 가입자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상품으로 무료 공개되는 게 기존 영화의 유통 흐름이었다.

넷플릭스는 이 판을 완전히 흔들었다. 영화 개봉 후 부대수입으로만 여겨졌던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관뿐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도 스크린으로 인정해 달라고 나섰다. 영화관이 영화 상영을 독점하는 구조를 깨고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산업 구조의 틀을 깨는 혁신 기업의 등장은 기존 경제주체의 반발을 부른다. 옥자 개봉 당시 국내 스크린 점유율 98%를 차지한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옥자 상영을 거부했다. 칸 영화제에서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옥자를 영화로 볼 것이냐로 논란을 빚었다. 칸 영화제에서 옥자가 상영됐을 땐 관객 야유로 상영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는 이런 현상을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기술혁신은 기존 질서를 파괴한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혁신으로 낡은 것이 파괴되고 새 질서가 생기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한다는 게 창조적 파괴 이론의 핵심이다. 우버 등 차량공유 서비스와 택시업계 갈등, 에어비앤비와 숙박업계 갈등 역시 기존 산업 구조를 바꾸는 혁신기업 등장으로 생긴 일이다.

옥자가 개봉한 지 3년여가 흘렀지만 넷플릭스와 영화업계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한 ‘로마’가 논란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내 상업 영화관에서 7일 이상 상영된 영화에만 출품 자격을 준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로마’는 소규모 개봉을 거쳐 심사 자격을 획득한 뒤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다. 할리우드 전통주의자들 사이에서 넷플릭스 제작 영화는 아예 시상식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기존 산업계 반발에도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변화는 더 앞당겨지는 추세다. 지난해만 해도 ‘로마’를 흘겨봤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92년 전통을 깨고 올해는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도 출품하도록 허용했다. 한국 영화 ‘사냥의 시간’은 지난달 영화 개봉 없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최초 공개됐다. 넷플릭스 등 OTT가 투자한 영화가 아닌 작품이 OTT에서만 개봉한 건 사냥의 시간이 처음이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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