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클럽 관련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8일 만에 54명으로 급증한 것은 이 지역에서 광범위한 조용한 전파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첫 증상을 호소한 환자는 경기 용인지역 66번 환자(29·남)를 포함해 최소 2명이다. 코로나19 잠복기가 5~7일 정도인데다 환자가 나온 클럽 중 한 곳이 지난달 24일부터 문을 연 것을 고려하면 이 지역에서 코로나19가 10일 넘게 소리없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태원서 '조용한 전파' 이뤄져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9일까지 42명이었던 이태원클럽 관련 확진자는 10일에도 12명이 추가돼 54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43명이 클럽을 다녀간 뒤 확진됐다. 11명은 2차 감염자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10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지난달 말부터 이달 6일까지 이태원 지역 클럽 주점 등을 다녀온 사람은 외출을 자제하고 검사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7일에는 '2일 새벽 0~4시 3개 클럽을 다녀간 사람'을 위험군으로 정했던 것에서 대폭 확대됐다.
서울시 조사 대상은 이보다 넓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6일까지 이태원클럽 등을 오간 사람은 모두 검사 받아 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방역당국보다 1주일 정도 이르다. 확진자가 다녀간 클럽들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문을 닫았다가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바뀌면서 영업을 시작한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확진자가 많이 나온 킹클럽과 트렁크는 이달 2일부터 문을 열었지만 소호는 지난달 24일부터 영업을 재개했다"며 "아직 첫 환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넓은 범위로 조사 대상을 확대했다"고 했다.
○첫 환자 발생시기 따라 규모 달라져
이태원 클럽 등에서 확산된 코로나19는 아직 첫 확진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 2일 처음 증상을 호소한 사람이 2명이지만 이들이 누구에게 감염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평균 잠복기가 5~7일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지난달 25일 이후 누군가와 접촉해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는 24일에도 이 지역 클럽을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됐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태원 지역에서 언제부터 누구를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됐는지에 따라 피해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신천지대구교회에서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된 것은 첫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지 12일이나 지난 뒤 확인된데다 소규모 모임 등을 통해 여러차례 밀접접촉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동 코리아빌딩도 첫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뒤 확인되기까지 16일이 걸렸다. 이태원 클럽에서 첫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것은 지난 2일, 확인된 것은 6일이다. 확진까지 기간이 4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이른 시기 추가 확진자가 있었다면 감염 규모가 더 커질 위험이 크다. 더욱이 확진자 중 일부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황금연휴 기간 2~3차례 클럽을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클럽의 특성상 여러차례 밀접한 접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정 본부장은 "이태원 클럽 집단발병은 밀폐된 시설,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의 밀접한 접촉으로 인한 집단감염"이라며 "7명의 확진자가 가족, 지인 등을 전염시켜 11명이 2차 감염되는 등 전파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전염력이 높다"고 했다.
○활동 왕성한 젊은 층, 동선도 복잡
감염자들이 대부분 활동이 왕성한 20대라는 점도 방역당국의 부담을 키우는 원인이다. 확진자들이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의료기관만 4곳에 이른다. 지난 8일 성남의료원의 간호사가 확진 판정을 받아 수술장 문을 받았다. 직원이 확진판정을 받은 200병상 규모 서울 영등포병원도 휴원했다.
확진자가 근무했던 제주도의 더고운병원, 확진자가 입원한 인천의 한 정신병원도 긴급 소독을 하는 등 방역조치에 들어갔다. 정 본부장은 "의료기관 4곳 정도가 관리대상"이라고 했다.
대규모 집단 감염이 있었던 콜센터에 근무하던 직원도 확진판정을 받았다. 카카오뱅크 위탁 콜센터다. 다만 이곳은 코로나19 집단 감염위험을 낮추기 위해 150석 좌석 중 70여명만 근무한데다 근무기간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 본점, 현대백화점 충청점도 각각 명품 매장과 화장품 매장에서 확진자가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지난 9일 소독 조치를 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다른 다른 밀집시설에서 확진자가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전파 규모는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