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우리 의료진은 투철한 책임감으로 ‘성공 방역’만 이끈 것이 아니다. 의료 제도의 미래도 앞당기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의료’라는 제도 혁신의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에서 의사·환자 간 대면 진료가 아닌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지난 2월 말부터 ‘전화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전에는 고혈압 약을 타기 위해 2주에 한 번 동네 의원을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① 혈압 수치(환자 측정)를 알려주면 ② 의료진이 처방전을 가까운 약국으로 보내주고 ③ 환자는 약국에서 혈압약을 찾는다. 단, 한시적으로.
국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른바 폰(phone) 닥터를 찾은 환자는 13만 명(56일간)을 넘었다. 참여 의료기관은 3000여 곳에 이른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 환자들은 ‘(기저 질환) 약 하나 받아오려면 버스에서 병원에서 2~3시간 소비한다’ ‘감염 걱정에 병원 갈 수 있겠나 망설였는데 바로 해결됐다’ 등 기회비용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환자의 87%가 전화 진료에 만족했다.
‘의료진·환자 간 플랫폼’에 관심을 보여 온 스타트업계도 반색했다. 사업 기회가 늘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텔라닥(비대면 의료 플랫폼), 핏빗(웨어러블), 아이리듬(부정맥 진단용 휴대용 의료기), 23앤미(개인유전정보 분석), 필백(의약품 배송) 등의 스타트업들이 나섰지만 규제에 막혔다. 미국은 스타트업계뿐 아니라 애플, 구글, 아마존 등까지 디지털 헬스케어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한국의 실력 있는 의료 스타트업은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홈그라운드를 등지고 미국으로, 일본으로 떠나는 사례가 눈에 띈다.
한국이 규제의 굴레에 갇힌 사이, 전 세계 비대면 의료 시장은 디지털 혁신, 융복합화 진전으로 50조원 시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산업에 대한 관심, 고령 인구 증가세라는 요인이 더해지면서 이 시장은 더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 36개국 중 26개국이 비대면 의료를 도입했다. 미국, 영국은 전체 환자 5~6명 가운데 1명은 직접 병원을 가지 않고 처방을 받는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은 비대면 환자 수가 이전의 170배까지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 보수적이던 일본도 5년 전부터 허용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물론 ‘의료를 산업의 영역으로 봐선 안 된다’는 일부 의료진의 비판도 눈여겨봐야 한다. ① 대면 진료에 비해 비대면 진료의 오진율이 높을 수 있다(이번 한시적 전화 진료 기간 동안 오진은 한 건도 없었다) ②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③ ICT를 잘 갖춘 3차 병원(대형 병원)으로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본격적인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대면 의료가 의료 체계, 국민 편의, 의료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고 논의해야 한다. 중장기 관점에서 전문가를 육성하고 그에 맞는 유인 양립 체계도 세워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비대면 의료가 ‘정치 이슈화’로 논의가 중단돼선 안 된다. 16대 국회에서 20대 국회까지 거의 20년간 비대면 의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소위원회에 계류됐지만, 이렇다 할 논의는 없었다.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의료적 거리두기(medical distancing), 교육적 거리두기(educational distancing)로 옮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의료의 미래가 어떻게 그려질지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제도의 틀을 바꿔 사업 기회는 넓히고, 소비자 편익은 높여야 한다. ‘슬기로운 의료생활’의 물꼬를 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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