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탑만 남아 있는 골짜기를 지나
마지막 종소리를
이렇게 보자기에 싸 왔어요
그런데 얘야, 그게 장엄한 사원의 종소리라면
의젓하게 가마에 태워 오지 그랬느냐
혹, 어느 잔혹한 전쟁처럼
그것의 코만 베어 온 것 아니냐
머리만 떼어 온 것 아니냐,
이리 투정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긴긴 오뉴월 한낮
마지막 벙그는 종소리를
당신께 보여주려고,
꽃모서리까지 환하게
펼쳐놓는 모란보자기
시집 《분홍 나막신》(문학과지성사) 中
오뉴월 한낮에 활짝 핀 모란은 시인의 눈으로 보기에 단순히 피어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종소리가 들리는 어떤 낯선 이미지로 보이기도 하고, 모란이 당신께 보여주려고 마지막 벙그는 종소리를 담아 온 보자기로 보이기도 하지요. 모란꽃에게도 마음이란 게 있다면 그 부드럽고 연한 꽃잎을 닮은 정성스럽고 순수한 마음이겠습니다. 그러니 모란꽃을 보면 꽃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모란이 품고 온 이야기를 들어볼 일입니다.
김민율 시인(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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