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시위' 부추기는 국회의 해결법 [조미현의 국회 삐뚤게 보기]

입력 2020-05-11 11:12   수정 2020-05-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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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지난 7일 합의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형제복지원이 3000여명의 장애인과 고아를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키는 등 인권 유린을 저지른 사건을 말합니다. 현재까지 이곳에서 확인된 사망자는 551명에 달합니다.

20대 국회 종료를 한 달 앞두고 안타까운 사건의 해결을 위한 법이 처리될 길이 열린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법이 왜 이제야 의원들의 관심을 끌게 됐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사법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에 의한 폭력과 인권 침해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제정된 법입니다. 이 법에 따라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했는데요. 2010년 활동기한이 끝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 등이 해결되지 못한 채 위원회는 해산했습니다. 위원회의 재가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과거사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개정안을 처리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반발했고,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이 묶였습니다.

속이 타는 건 피해자들이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인 최승우 씨는 2년여 전부터 국회 앞에서 과거사법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무려 24일 간 단식을 이어간 최 씨는 병원에 이송됐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의 무관심은 이어졌습니다. 결국 최 씨는 지난 5일 의원회관 현관 지붕 위에 올라가 농성을 했습니다.


최 씨의 의원회관 농성 사흘 째 김무성 통합당 의원이 최 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최 씨에게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약속하고 농성을 풀 것을 요청했습니다. 김 의원은 "절차상 문제 때문에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 국회에서 해결하자는 합의를 봤다"며 "본회의를 당연히 열어서 (과거사법 등) 계류된 법안을 처리하고 국회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행정안전위 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은 "야당 간사와 함께 지난 3월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수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하는 것으로 원칙적인 합의를 봤다"고 했습니다. 통합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 역시 "20대 국회 마무리 시점에 과거사법 처리에 여야가 합의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이른 시일 안에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가슴 아픈 과거사의 상처가 아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극적 합의를 두고 "20대 국회가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훈훈한 평가가 나왔지만, 국회가 '강성 농성'에 못 이겨 일을 처리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합의가 가능한 사안임에도 토론도 없이 여야가 자기주장만 하다가 허송세월 했다는 겁니다. 민주당 주장대로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면 그 이유를 가지고 통합당을 끈질기게 설득했어야 했습니다. 통합당 말대로 개정안이 보완이 필요했다면, 타당한 근거를 내세워 민주당과 합의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결국 여야 모두 피해자가 위험천만한 농성에 나선 뒤에야 일을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겁니다.

언제까지 국민이 목숨을 걸어야 국회가 나서서 일을 할까요? 21대 국회에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랍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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