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는 서울 개포동 개포주공6·7단지(사진)의 사업에 파열음이 일고 있다. 일부 주민들이 서울시에 정비구역 직권해제를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개포주공6·7단지에선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조합설립 동의 철회서를 걷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정비계획을 처음부터 재수립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2월 조합설립 동의율(75%)을 훌쩍 넘긴 82%의 주민동의율로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설립됐다. 하지만 동의율을 낮추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년 2월까지 강남구에 조합설립을 신청하지 못하면 일몰제에 따라 구역해제 대상에 포함된다.
개포지구 한가운데 들어선 6·7단지는 이 일대 마지막 재건축 퍼즐로 꼽힌다. 1960가구 규모의 15층 이상 중층 단지여서 주변 저층 단지보다 사업이 늦어졌다. 당초 5단지까지 통합 재건축을 구상했지만 현재는 따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비대위가 구성된 건 재건축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정비계획 때문이다. 2017년 수립된 정비계획에 주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비대위 측 주장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재건축으로 짓게 되는 2994가구 가운데 2000가구가량이 중소형 면적대”라며 “향후 조합원들이 분양신청을 할 때 400여 가구는 면적대를 넓히지 못하고 소형주택을 배정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비대위는 정비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강남구가 주민공람 등의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주민 김모씨는 “주민들은 강남구가 입안한 정비계획이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며 “법에 명시된 조사와 확인 절차를 제대로 하지 않은 구청 담당자들을 감사원에 제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비계획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주민 총의를 통해 변경이 가능하다. 가구 수 등을 10% 이상 바꾸는 중대한 변경의 경우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그러나 이를 이끌어야 할 추진위원장 자리는 1년가량 공석이다. 선임 과정을 두고 내홍이 빚어지고 있는 탓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이달 안에 추진위원장을 선임한 이후 정비계획 변경을 위한 설계회사 선정 등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희망 주택형 조사에 필요한 추정분담금을 산출해줄 감정평가사 선정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비대위는 이달 초 아예 서울시에 정비구역 직권해제도 요청했다. 구역해제는 재건축 사업 자체를 물리는 절차다. 처음부터 밑그림을 다시 그리겠다는 것이다. 관철되지 않을 경우 구역지정 취소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주민 간 갈등으로도 번질 조짐이다. 한 주민은 “소수 세력인 비대위가 억지를 부리면서 사업을 막아서고 있다”며 “사업 지연으로 주민들의 피해가 커지는 일을 벌인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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