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수십년 적대적 노사관계 대전환 기회 왔다"

입력 2020-05-12 17:41   수정 2020-05-13 01:23


“역설적이지만 국가 재난 상황이 후진적인 노사관계를 바꿔놓을 획기적인 기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노사가 기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참고, 나누고, 버틴다면 2020년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레전드(전설)’로 기억될 것입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사진)은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절체절명의 위기인 동시에 천재일우의 기회”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동안 한국의 대표적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려온 노사관계가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문 위원장은 “수십 년 된 적대적 노사관계가 항구적 상생관계로 전환되려면 기업은 노동을 인건비로만 생각해온 인식을 버리고, 노동조합은 이제 투쟁이 아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노조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1993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사무총장을 맡아 민주노총의 산파 역할을 한 자타공인 노동계 대부다. 2017년 8월부터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를 이끌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인적 자원 경쟁력지수(GTCI·The Global Talent Competitiveness Index)’에 따르면 노사관계의 안정성을 엿볼 수 있는 노사협력지수에서 한국은 2016년 102위에서 계속 떨어져 지난해 120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노사협력지수가 낮은 곳은 베네수엘라, 모잠비크, 볼리비아, 앙골라 정도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노사관계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미만 나라 수준인 이유를 문 위원장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협력지수는 경영자들이 노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 임금 수준은 어느 정도 올라와 있어 사실상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 투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사용자들이 여전히 노사 협력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계파 갈등 등 복잡한 노조 내부 문제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습니다.” 노조 내부의 권력 투쟁이 노사관계를 꼬이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는 얘기다.

국내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유(有)노조와 무(無)노조로 구분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문 위원장은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초기업 단위의 공동협상 필요성과 대기업 노사의 각성을 요구했다. 가령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현대차가 임금협상을 마쳐야 기아차,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등도 현대차와 비슷한 협상을 맺는 현실에서 굳이 개별 기업마다 협상하는 비효율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그룹 단위로 묶어서 협상하면 원청의 임금 인상은 자제하고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등의 임금을 조금 더 올려 양극화를 줄여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 위원장은 “초기업 단위 협상이 되려면 가장 상위에 있는 기업과 소속 노조가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질 않는다”며 “대기업과 소속 노조 모두 공동교섭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움직이지 않는 것은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문 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노사관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뀌려면 노·사·정의 공동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항공산업을 예로 들었다.

“항공업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없앨 수는 없잖아요. 나중에 경제가 정상화되면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회사도, 직원도 그 사람들입니다. 기업은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고, 노조는 휴직과 임금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참아내고, 정부는 최대한 지원해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야 합니다.”

글=백승현/사진=강은구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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