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 기자] 유행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시대적 가치를 발휘한다. 레드카펫 위의 셀럽이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유행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90년대를 지나서 2000년 그리고 2010년대를 보낸 패션계는 여느 때보다 더욱더 변화를 그리워하고 열정적이다. 단순하게 노골적인 의상, 화려하고 대담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는 신물이 난 그들이다.
유스컬처 웨어는 분명 감각적이고 웨어러블한 문화를 만들어냈지만 틴에이저를 제외한 세대의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한 듯하다. 이를테면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부를 만큼의 트렌드를 이끌지 못했다고 설명할 수 있는 것. 패션의 한 장르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스타일링과 색깔이 필요하다.
그런 시점에서 ‘아메리칸 헤리티지(American Heritage)’의 귀환은 반갑고도 흥미롭다. ‘클래식’이라는 격식을 지키면서 각자의 빛깔을 그려낸다는 점, 심플한 카테고리 안에서 향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더욱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아메리칸 헤리티지 웨어의 특성과 그 방향성에 대해서 면밀히 다뤄보고자 한다.
팝 아트와 대중문화 콘텐츠
미국이 독립 혁명을 통해 자유를 끌어낸 지 244주년이 된 오늘. 갖가지 역사적 사건과 생활 환경 속에서 패션도 활발하게 변모했다. 그중 지금의 문화가 자리 잡은 데에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영향이 가장 크다. ‘팝 아트(Pop Art)’의 대표주자 키스 해링(Keith Haring), 앤디 워홀(Andy Warhol)은 미국의 광고, 만화 혹은 유명인까지 이해하기 쉽게 그려냈다.
이들을 통해 친숙하게 대중문화를 접한 대다수는 유럽의 오뜨꾸띄르 패션에서 벗어나 ‘어렵지 않은’ 패션을 추구하게 된다. 실제로 팝아트의 속성은 무엇보다도 쉽고 직관적이었기 때문에 전세대적인 콘텐츠를 이룰 수 있었다.
팝 아트의 단순함은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나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 같은 로컬 밴드에 영향을 주었고 그 모습 그대로 패션 심볼에 투영되었다. 특히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LP는 실험적 가치가 실현된 작품이었다. 바나나 껍질을 벗길 수 있게 스티커 형태로 만들어진 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창조적인 요소를 갖추었던 것.
아메리칸 헤리티지 브랜드의 시작
랄프 로렌(Ralph Lauren)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가장 효과적으로 다가간 CEO다. “나는 패션이 아니라 스타일을 믿는다”고 말했던 그는 미국적인 캐주얼함을 필두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큼지막한 성조기 심볼이 깃든 스웨터, 빳빳한 느낌의 폴로 셔츠 등의 아이템은 브랜드적 가치를 넘어서 미국 패션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이 50년이라는 다소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을 가장 잘 표현하는 브랜드로 칭송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스타일링이 쉽다는 것. 1974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속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는 랄프 로렌이 직접 만든 슈트를 입고 젠틀한 매력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폴로 랄프 로렌은 다른 브랜드와는 차별화된 가치를 나타낼 수 있었다.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도 그 중심에 서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개성 있는 ‘프레피 룩(Preppy Look)’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그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스눕 독(Snoop Dogg) 등 당시 대세 셀럽들에게 협찬해 존재감을 공고히 세웠다. 이른바 ‘셀럽 마케팅(celebrity Marketing)’을 브랜드 홍보에 잘 활용한 것.
브랜드 타미 힐피거의 로고는 자신이 창립자 직접 디자인한 것인데 레드, 화이트, 블루의 3 색상을 통해 미국인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클래시컬한 로고 위에 미니멀한 실루엣의 착장, 혹은 큼지막한 로고의 스트리트 스타일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들이다. 아메리칸 헤리티지의 아이덴티티를 넘어서 새로운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것.
현대적 가치를 잇는 지금의 패션
셀럽들에게 아메리칸 헤리티지 웨어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장르다. 꾸민 모습보다도 미학적인 측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 레드카펫 위에서의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더없이 담백하며 감각적이다. 티모시 살랴메(Timothée Chalamet)의 라이프 스타일은 이러한 특성에 밀접하게 다가가있는 듯하다. 울 소재 재킷 안의 데님 셔츠 그리고 버건디 컬러 이너 웨어까지 완벽한 아메리칸 웨어를 표현한다.
샬라메의 패션은 다채롭게 빛난다. 패턴과 소재, 색감에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클래시컬 무드에 초점을 두고 표현한다. 한 시사회에서는 회색 새틴 소재의 수트와 블랙 카우보이 부츠로 스타일링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시사회에서는 진홍색 수트로 유니크한 맨즈 웨어를 연출하기도 했다. 답답하게 단추를 다 잠가 놓는 것이 아니라 윗단추를 몇 개 풀고 링 액세서리를 함께 스타일링해 우아한 무드를 그려내기도.
싱어송라이터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의 패션은 그의 음악과는 다르게 키치하고 부드럽다. 과감한 자수 패치로 재킷과 바지를 꾸미거나 파스텔 핑크 컬러의 티셔츠와 크록스(Crocs) 스니커즈를 스타일링하기도 한다. 물론 그 착장에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아메리칸 캐주얼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카우보이 햇.
젠더리스 웨어라고 그의 패션을 평하기에는 절제미 넘치면서도 간결한 느낌이다. 매 무대 위에서 얼굴까지 침범한 타투와 함께 감각적인 패션 센스를 보여주는 그다. 아메리칸 헤리티지와 유니크 웨어라는 확실한 일관성으로 뭉쳐져 있는 그에게 레드카펫은 더는 어려운 장소가 아닌 듯하다. (사진 출처: 벨벳 언더그라운드 공식 홈페이지, 폴로 랄프 로렌, 타미힐피거, 스플래쉬 뉴스, 크록스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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