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2015년 다국적 제약회사 사노피와 맺은 국내 최대 규모 신약 기술수출 계약이 사실상 깨졌다. 사노피가 한미약품에 해당 약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일방 통보했기 때문이다. 기술이전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 한미약품은 손해배상소송 등 법적 절차를 검토하는 등 강경 대응하기로 했다.
한미약품은 사노피가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개발 권한을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14일 발표했다. 기술이전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의미다. 두 회사는 120일 동안 협상한 뒤 최종 반환 여부를 확정한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당뇨병 치료 후보물질이다. 한미약품은 약효 지속 시간을 늘려주는 랩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해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 환자가 1주일에 한 번만 맞으면 되도록 개발해왔다. 사노피는 2015년 한미약품으로부터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지속형 인슐린, 지속형 인슐린 콤보 등 3개 후보물질을 포함한 퀀텀프로젝트를 39억유로(약 5조2000억원)에 사갔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기술수출 중 가장 큰 규모다.
사노피는 이들 후보물질의 허가 최종단계인 임상 3상 시험을 해왔다. 사노피가 임상 도중 계약 파기를 선언해 한미약품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사노피가 임상 3상은 마무리짓겠다고 수차례 공개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이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글로벌 3상 중 사노피의 당뇨약 계약 파기…한미약품 "소송 불사"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가 한미약품의 퀀텀프로젝트 개발을 포기한 것은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사인 일라이릴리는 주사 맞는 기간을 하루에서 1주일로 늘린 당뇨병 치료제를 2016년 출시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이를 먹는 약으로도 개발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품 성공 가능성은 점차 낮아졌지만 임상 3상 시험을 이어가려면 수천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추가로 투입해야 했다. 지난해 바뀐 사노피 경영진이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 치료제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하지만 사노피의 이번 결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말 일부 임상 3상 시험의 종료를 앞두고 갑자기 개발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는 5000여 명의 환자는 불편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임상 약으로 치료할 길이 없어질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시장성에 따라 제품 개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자신들이 끝내겠다고 약속했던 임상 도중에 계약을 파기한 것은 아쉽다”는 평가가 나왔다.
퀀텀프로젝트 운명 달린 ‘120일’
사노피와 한미약품은 앞으로 120일 동안 퀀텀프로젝트 기술수출 계약을 이어갈지 논의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사노피가 퀀텀프로젝트 임상을 지속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취임한 폴 허드슨 사노피 최고경영자(CEO)가 “암, 혈액질환, 희귀질환, 신경계질환 등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당뇨병, 심혈관질환 연구개발은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지속형 인슐린, 지속형 인슐린 콤보 등 퀀텀프로젝트 3개 후보물질을 가져오면서 사노피가 한미약품에 지급하기로 한 금액은 39억유로(약 5조2000억원)다. 계약금은 4억유로다.
하지만 계약 이후 퀀텀프로젝트는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6년 12월 사노피가 세 가지 후보물질 중 지속형 인슐린을 반환하면서 계약 규모는 27억2000만유로로 줄었다. 지속형 인슐린 콤보도 한미약품이 책임지고 개발한 뒤 사노피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바뀌었다.
이번에 사노피가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지속형 인슐린 콤보까지 반환하게 되면 한미약품이 얻는 수익은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 2억유로(약 2600억원)로 크게 줄어든다.
의료계에서도 “아쉽다”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한 퀀텀프로젝트에 대한 애착이 크다. 업계에서는 사노피가 이런 한미약품의 상황을 역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진행 중인 임상 3상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사노피가 모두 부담하기로 했던 임상 비용을 일부 나눠 부담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두 회사가 완전한 결별을 택할 가능성도 높다. 이때 한미약품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소송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사노피는 2015년 미국 제약사 렉시콘으로부터 당뇨병 신약 후보물질 진퀴스타(소타글리플로진)를 도입했다가 지난해 7월 계약 해지를 선언했다. 전체 계약 규모는 14억달러(약 1조7200억원), 계약금은 3억달러다. 사노피의 일방적인 통보에 렉시콘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결국 두 회사는 사노피가 렉시콘에 2억6000만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렉시콘은 이 비용을 진퀴스타 개발에 쓰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당뇨병 치료제 개발을 멈춘 사노피의 결정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국내 한 대학병원의 내분비내과 교수는 “사노피의 장기지속형 인슐린 치료제 란투스는 국내 인슐린 시장 1위 제품”이라며 “당뇨병 환자 치료제를 판매하면서 큰 수익을 올리고도 당뇨 환자를 위한 연구개발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한미약품 “내년 초 새 개발사 찾을 것”
한미약품은 임상시험을 완료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노피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퀀텀프로젝트 개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이번 통보는 사노피 CEO 교체 후 당뇨 질환 연구를 중단하는 R&D 개편안에 따른 사업계획 변경으로 인한 것”이라며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유효성 및 안전성과는 무관한 결정”이라고 했다.
사노피와 한미약품 간 퀀텀프로젝트 계약이 완전히 파기되면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다국가 임상시험을 이어가기 위해 다른 글로벌 파트너사를 찾을 예정이다. 한미약품 측은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경쟁약물인 ‘트루리시티(성분명 둘라글루타이드)’ 비교 임상 결과가 나오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새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체 측은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상용화될 시점에 같은 계열 약물 글로벌 시장이 100억달러(약 12조245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새 파트너를 찾고 계약을 하는 기간을 고려하면 임상 3상 종료와 제품 상용화 시기는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박상익/이지현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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