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美 국채, 아무리 찍어도 잘 팔리는 이유

입력 2020-05-15 08:42   수정 2020-05-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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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재무부는 이번 주 세 차례에 걸쳐 국채 입찰을 실시했습니다. 3년물, 10년물, 30년물을 골고루 수백억달러 어치씩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한 주에 이렇게 많은 금액의 국채를 연이어 발행한 건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2분기에 2조999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내놓기로 했으니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엄청난 양의 국채가 쏟아졌지만 모두 성공적으로 팔렸고, 입찰엔 강한 경쟁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11일 3년물 노트는 연 0.23% 금리에 420억달러 규모가 무리없이 팔렸습니다. 12일에 내놓은 10년물 320억달러 어치는 2.69배라는 높은 응찰률 속에 금리가 10년물 사상 최저인 연 0.70%에 결정됐습니다. 지난 4월 250억달러 규모 입찰에서 응찰률 2.43배, 금리 0.782%를 기록한 것보다 나은 조건입니다.
13일 입찰에 부친 30년물 220억달러도 응찰률 2.30배, 금리 연 1.342%에 성공적으로 발행됐습니다.
국채 공급 우려에도 강한 수요가 다시 확인된 겁니다.



올해 4조4000억달러 어치의 천문학적인 양의 국채가 쏟아질 예정이지만, 이렇게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이 네 가지 이유에서 현재 미국 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전반적 함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① 강력한 미 중앙은행(Fed)에 대한 신뢰

국채가 무리없이 소화되는 건 Fed에 대한 신뢰가 강한 덕분입니다. Fed는 무제한적인 자산 매입을 선언한 뒤 매주 국채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Fed가 보유한 국채는 9900억달러 어치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재무부가 4월에 빌린 돈 1조4000억달러의 70% 수준입니다.

한 때 주당 600억달러를 넘었던 국채 매입량은 이번 주 70억달러까지 줄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모두들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Fed가 국채 매입을 늘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금리 상승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통상 국채를 사고파는 채권 매니저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재정 적자입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가 터진 뒤에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연일 "재정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는 판입니다. 이 말 뒤에는 "내가 금리는 낮게 유지해 줄께"란 뜻이 숨어있겠지요.



이렇다보니 월가에선 10년물 금리가 당분간 연 0.5~0.8%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월가 관계자는 "10년물 수익률이 당분간 1%대에 도달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백신이 빨리 개발돼 바이러스 문제가 사라지거나, 혹은 경기가 예상보다 빨리 좋아지거나, 아니면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거나, 재정 적자가 예상보다 빨리 폭증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국채 금리가 요즘 조금 올라간 건 워낙 미국 기업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회사채를 많이 찍어내 돈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채 시장에서는 별달리 금리 상승 요인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금리가 오른다면 Fed가 팔을 걷어부칠 겁니다.
채권 금리 상한을 정하는 일드캡(Yield Cap)을 시행할 것이란 기대가 강합니다. 예를 들어 10년물 금리를 1%로 고정하고 그 이상으로 금리가 높아질 경우 무한대로 채권을 매입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정책입니다. 지난 1942~1951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자금 조달 및 전후 경기 회복을 위해 Fed가 시행했던 해법입니다.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 3월 0.31%까지 급락했었습니다. 만약 코로나바이러스의 2차 유행이 발생하거나, 경제 재가동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 금리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Fed는 금리가 너무 낮아지는 것도 막을 겁니다. 그렇게 떨어진다면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 수익률이 너무 낮아져 시장의 국채 수요가 감소할 수도 있겠지요.

② 안전자산 수요는 여전히 강하다

여전히 미 국채라는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강합니다. Fed가 뒤를 받치고 있긴 하지만, 해외 투자자들도 미 국채 시장에서 여전히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 재점화는 시장 불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폭스비즈니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13일 파월 의장의 발언도 위험자산 회피 현상을 불렀습니다. 파월 의장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주최 웹캐스트 대담에서 “미국의 경제 상황은 매우 불확실하며 심각한 하강 위험이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경기 회복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느릴 수 있으며, 느린 회복은 기업과 가계 파산 등으로 오랜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텍사스, 일리노이, 애리조나 등 경제 활동 재개를 추진 중인 미국의 각 주에서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증가세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불안꺼리입니다.



③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

미 국채 수요에는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 그리고 달러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달러화가 가장 큰 안전자산이란 생각이지요.

월가 관계자는 "미 국채 금리가 많이 내려왔지만, 유럽 일본 등 다른 선진국 국채와 비교해보면 여전히 금리가 높은 편"이라며 "게다가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달러가 항상 강세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달러 강세와 금리 하락 가능성에 채권 투자자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펀드매니저는 "솔직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 돈을 맡길 곳은 미국 밖에 없다"며 "10년물이 1% 근처로 가면 사겠다는 수요가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비즈니스뉴스 인터뷰에서 "나는 달러화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지금 당장은 달러 강세가 좋고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달러 약세가 미국 기업과 경제에 좋다'던 그동안의 발언을 뒤집은 것입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해외 투자가 미국으로 몰려들면서 막대한 양의 국채를 발행하기에 좋은 여건이 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④ 인플레이션 걱정은 없다

이번 주 연이어 물가지수가 발표됐습니다.
12일 나온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8% 하락했고,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전월보다 0.4% 급락해 1957년 이후 가장 많이 하락했습니다.
13일 발표된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의 경우 전월 대비 1.3% 내려 사상 최대 하락세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디플레이션 우려가 큰 상태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최소 올해와 내년은 수요 감소 등으로 인한 디플레가 우려되고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가면 너무 많이 풀린 돈 때문에 인플레가 생기겠지만 지금 걱정할 때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인플레가 없다면 낮은 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몇 년 뒤 경기가 나아지면서 총통화(M2)가 늘어나 인플레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Fed는 금리를 올려야할 수 있습니다. 국가와 기업, 가계에 역대급 부채가 쌓인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미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생기겠지만, 한국 경제는 훨씬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은 더 높여야합니다.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이 적은 나라가 금리까지 낮다면 해외 자금이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런 일이 현실화되면 한국의 기업과 가계(주택담보대출)가 느끼는 이자 부담은 상당할 수 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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