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계처리기준(IFRS17)이 도입되면 보험사들이 부실화된다는 주장은 과도한 우려입니다. 오히려 회계처리기준이 바뀌면 보험사들의 손익은 더 개선될 수 있습니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산하 IFRS17 실무해석 전문가그룹 연구위원인 박정혁 삼성생명 회계파트장(사진)은 한국회계기준원이 15일 ‘IFRS17 도입의 의미와 과제’를 주제로 연 온라인 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IFRS17이 예정대로 2023년 적용되면 보험사가 재무제표에 손익을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현재 보험사는 한 해 동안 들어온 보험료는 수익으로, 지출한 보험금은 비용으로 각각 인식해 보험 손익을 산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개별 보험계약 한 건 한 건으로 놓고 보면 계약자가 보험서비스를 받기도 전에 해당 보험계약으로 들어온 보험료를 미리 이익으로 반영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때문에 IFRS17 아래에선 보험사가 보험 판매로 앞으로 받을 금액과 보험금으로 지급할 금액의 차이(장래이익)를 손익으로 본다.
자산운용 손익도 변한다. 지금은 해당 연도에 보험료를 운용해 올린 수익률과 보험계약을 맺고 있는 고객에게 보장해야 할 수익률의 격차로 손익을 산정한다. 반면 IFRS17에선 운용 수익률과 보험상품의 금리 차로 인한 손익은 한꺼번에 반영해 처리한다. 과거 고금리 상품을 많이 팔았던 보험사들은 금리 하락에 따른 역마진을 대거 손실로 쌓아야 한다. 대신 다음 해부터는 자산운용 수익률만 손익으로 인식한다. 예를 들어 보험사의 자산운용 수익률이 연 3%이고 보험상품 금리는 연 5%라면, IFRS17을 도입한 해에 미래에 발생할 2%포인트 수준의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하고 그 이후엔 연 3% 수준의 이익을 매년 인식하게 된다.
박정혁 파트장은 이 같은 차이로 인해 IFRS17을 적용한 첫 해엔 보험사들이 대규모 손실을 내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지속적으로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봤다. 그는 “IFRS17로 전환한 첫 해 역마진 계약 내용이 한꺼번에 손실과 부채로 반영되기 때문에 이듬해부터는 자산 운용으로 벌어들인 현금이 모두 이익으로 잡힌다”며 “보험 계약자들에게 지급할 금액도 이전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보험손익 역시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파트장은 IFRS17로 보험사 재무구조가 나빠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남은 시간 동안 자본 확충을 진행하면 보험사 대부분이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IFRS17 도입으로 손익 처리방식이 바뀌면 보험 계약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 규모도 크게 늘어난다. 지금까지 이익으로 처리해 자본으로 적립해놨던 자금 중 일부를 부채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 파트장은 “특히 유입된 보험료를 적극적으로 배당재원으로 활용했던 보험사일수록 자본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상 보험료를 미리 이익으로 인식하면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부채 증가에 대비해 자본을 쌓는 것은 새로운 회계처리기준을 적용하기 위해 꼭 거쳐야할 정상적인 절차”라고 말했다.
IFRS17 도입시기를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잇따랐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IFRS17은 투자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한테도 훨씬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준”이라며 “무조건 예정대로 적용해야 하며 감독회계, 세무회계, 상법 등 이와 관련된 규정을 모두 IFRS17에 맞추는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의형 한국회계기준원장도 “IFRS17을 통해 보험 계약의 경제적 실질을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며 “보험사 경영진도 앞으로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IFRS17을 적용하기 전 새 시스템에서 작성한 재무제표가 정확한지 사전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병오 딜로이트안진 전무는 “보험사들이 새 시스템 개발은 거의 완료했지만 아직 이 시스템에서 나온 숫자가 믿을 수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은 상태”라며 “IFRS17가 도입되는 시기 첫 감사가 이뤄지기 전에 반드시 모의 테스트를 진행해 숫자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