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 ‘n번방 방지법’을 둘러싸고 정부와 인터넷 업계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참여연대 등 시민·스타트업 단체 6곳은 17일 국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에 “졸속추진을 중단하고 21대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처리하라”는 공동의견서를 전달했다. 법제사법위원회 등 국회 일정을 앞두고 재차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 법안은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해 마지막 단계인 법사위, 본회의 처리를 남겨두고 있다.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법 적용, 불법촬영물 유통방지 조치의무 및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 부과 등이 핵심 내용이다. 상임위 통과 이후 업계에서는 “인터넷 사업자에게 사전검열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방통위는 지난 15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개인 간 사적 대화는 사업자의 유통제한 대상이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문자, 카카오톡.라인 등에서의 대화, 이메일 등은 사적인 대화에 해당하는 만큼 인터넷 사업자가 관리할 의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에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일반인이 특별한 로그인이나 관리자의 승인 없이도 접근 가능한 정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공개 게시판, 포털 뉴스 댓글, 오픈 채팅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카톡 오픈채팅은 별도의 승인 과정 없이 접근 가능한 만큼 관리 의무 대상에 포함된다.
업계는 정부의 답변이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민간사업자의 사전검열 강제화에 대한 우려는 해소됐지만 불법촬영물 차단의 기술적 문제점 등은 여전히 해명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촬영물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불가능한 것을 강제하는 꼴인데 이번 해명에선 이러한 점이 언급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등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미진한 것도 한계로 꼽힌다. ‘n번방’의 경우 복잡한 승인과정을 통해 가입할 수 있어 일반에 공개된 정보가 아닌데다 피해사실에 대한 신고가 있어도 본사에 대한 수사는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다. 텔레그램 본사와 서버의 위치가 숨겨져있어 협조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경찰 및 국제공조를 통해 동일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 사업자 의견을 수렴해 우려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공론화 과정을 다시 거치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스포 관계자는 “공동의견서와 더불어 여야 원내대표단에 긴급면담요청서를 전달했다”며 “면담에 대한 답변이 없으면 본회의 하루 전인 19일 국회 앞에서 면담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원내대표실로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수영/구민기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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