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재난지원금 눈치보기

입력 2020-05-17 17:10   수정 2020-05-18 01:02

“저는 긴급재난지원금 이미 받아서 써버렸는데….”

기획재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지난 13일 중앙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과장급 이상 기부’를 선언하자 다른 부처에선 기재부를 따라 해야 할지 ‘눈치 게임’이 한창이다. 기재부는 이날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중심으로 자발적 의사에 따라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데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고용노동부도 당초 국장급 이상부터 자발적으로 기부에 참여하기로 했던 데서 과장급 이상으로 범위를 넓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재부 발표를 의식한 건 아니다”며 “기부금을 고용보험기금에 편입해 고용유지 지원사업 등에 사용하기로 한 만큼 이전부터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기재부가 먼저 손을 들면서 긴급재난지원금 받기가 눈치 보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일자리 타격이 없는 공무원이 기부에 나서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기재부의 선언으로 ‘기부하지 않으면 눈치 보이는 분위기’가 된 건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부처의 과장은 “세종시에도 소상공인들이 있다”며 “내수 진작이라는 당초 취지를 살리자면 공무원들이 지원금을 받아 세종에서 소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가족들로부터 “우리 집에 공무원은 딱 한 명인데 왜 전액을 기부해야 하느냐”는 말을 듣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앞서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을 위해 공무원 연가보상비를 전액 삭감했다.

기재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기재부는 기부 참여 사실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자발적 의사’라고 작은따옴표까지 치면서 강조했다. 하지만 과장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기부하지 않을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식으로 기부 의사를 확인해 사실상 기부를 유도했다는 지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전날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도 직원들에게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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