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에 공급 막히면 年 10兆 날려…韓 반도체 투톱만 '새우등'

입력 2020-05-17 17:55   수정 2020-08-15 00:02


“대(對)화웨이 공급망(서플라이체인) 붕괴 작전에 한국도 동참하라는 압박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화웨이 추가 제재안을 받아본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의 분석이다. 미 상무부가 발표한 이번 조치의 핵심은 ‘앞으로 미국 기술·장비를 사용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으라’는 것이다. 전 세계 반도체 기업의 화웨이 납품을 중단시키겠다는 엄포다.

한국도 화웨이 제재 동참 압박

미국 정부는 지난해 5월 자국 기업에 “반도체 등 141개 제품을 중국 화웨이에 공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미국 마이크론의 D램과 퀄컴의 통신칩은 화웨이 제품에서 일제히 빠졌다. 빈자리는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통신칩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D램이 메웠다. 화웨이는 계속 스마트폰 신제품을 출시했고 5세대(5G) 네트워크 장비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유지했다.

화웨이에 치명상을 입히고 싶었던 미국 정부가 지난 1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꺼낸 카드가 이번 조치다.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화웨이 추가 제재안의 1차 타깃은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가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반도체 생산시설이 없는 화웨이는 그동안 TSMC를 통해 필요한 통신칩 등을 조달했다. 미국이 자국 기업인 퀄컴의 통신반도체 공급을 끊어도 화웨이가 스마트폰을 출시할 수 있었던 데는 TSMC의 힘이 컸다.

화웨이에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SMIC 등 자국 파운드리 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은 상당히 떨어지지만 통신칩을 못 만드는 수준은 아니다.

반도체업계에선 미국 정부가 TSMC를 묶는 것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업체를 대상으로 ‘화웨이 제재 동참’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창신메모리(CXMT) 양쯔메모리(YMTC) 등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이 최근 제품 양산에 성공했지만 상당 기간 한국 제품을 대체하는 게 불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화웨이의 공급망에 타격을 줘 통신장비 생산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라며 “한국 반도체 투톱이 고래싸움에 낀 새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외 다른 업종 확산 가능성도

업계에선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안이 한국 반도체 기업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우선 반도체 규제가 시행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화웨이는 2018~2019년 삼성전자 ‘글로벌 5대 매출처’에 포함될 정도로 ‘큰손’이다.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화웨이 매출 합계는 연 10조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자사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과 낸드플래시를 탑재하고 있다. 화웨이는 2018년 10월 출시한 메이트20프로, 작년 9월 내놓은 메이트30 등 주력 스마트폰에 SK하이닉스 D램 등 한국 기업의 메모리반도체를 넣었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화웨이의 빈자리를 다른 기업들이 대신할 때까지 상당 기간 실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TSMC가 화웨이 물량을 받지 못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점유율이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역시 미국 반도체 장비와 미국 기술이 들어간 네덜란드 장비 등으로 반도체를 만들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TSMC가 놓친 화웨이 물량은 고스란히 중국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수출 규제가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전 산업으로 중국과의 전선을 넓히면서 한국 등 제3국 기업과 중국의 교류를 차단할 것이란 얘기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다른 한국 기업들도 미국 중심의 자국 우선주의와 미·중 경제 전쟁의 후폭풍을 맞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내 기업이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외교적인 노력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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