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가 安保인 시대…특허청, 지식재산혁신청으로 개편해야"

입력 2020-05-18 17:48   수정 2020-05-19 00:57

“우리는 혁신을 혁신한다.”

글로벌 대기업이나 의욕 넘치는 스타트업에서나 사용할 듯한 조직 모토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사용하는 곳은 특허청이다. 박원주 특허청장(사진)이 부임한 2018년 9월부터 특허청 공무원들은 ‘WE INNOVATE INNOVATION’이라는 글귀가 담긴 배지를 달고 있다.

정부 인허가 등 소위 ‘갑질’하기 좋은 특허 업무와 혁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18일 기자와 만난 박 청장은 “특허가 곧 국가 전략과 안보가 되는 시대”라며 “스스로 생산한 지식재산권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박 청장은 중국의 반도체 특허, 일본의 사물인터넷(IoT) 특허 전략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두 나라 모두 해당 분야에서 신청한 특허 대부분을 승인해 주고 있다. 실제 국제 승인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절반 이하지만 전략 산업으로 지정한 분야와 관련해서는 최대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겠다는 이유에서다.

박 청장이 특허청 이름을 ‘지식재산혁신청’으로 바꾸겠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한국의 지식재산을 전략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혁신을 돕는다는 목표다. 일본이 지난해 7월 대표적인 수출 제한 품목으로 꼽은 폴리이미드 국산화가 대표적이다. 갤럭시 폴드 등에 들어간 폴더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의 핵심 소재인 폴리이미드는 국내 업체들이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수십만 번 접어야 통과하는 내구성 평가는 충족했지만 스마트폰에 사용될 만큼 투명하게 제작하는 데 실패해서다. 일본 업체들은 해당 기술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고 기업 기밀로 분류해 제품 개발의 힌트조차 얻기 어려웠다.

특허 전략 전문가들은 “폴리이미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특허는 일본 업체가 내지 않았지만 다른 제품에서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해당 업체의 특허 정보를 전수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결정적 단서를 국내 폴리이미드 제조업체에 전달했고, 이는 연구 기간과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박 청장은 “4억5000여만 건에 이르는 국제 특허를 분석하면 연구개발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많지만 민간기업들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며 “특허와 관련해 가장 많은 지식을 축적한 특허 전략 전문가들이 나서서 이런 어려움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라고 말했다. 1000여 명의 특허 심사관을 보유한 특허청의 경쟁력은 세계 5위권으로 특허전략원 등 산하기관까지 민간기업 지원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박 청장은 “오늘의 특허 출원 건수를 보면 미래 시장 판도가 보인다”고 강조했다. 시장점유율이 2018년부터 중국에 따라잡히기 시작한 LCD(액정표시장치)는 5년 전인 2013년께부터 특허에서 뒤지기 시작한 것으로 특허청 집계에서 나타났다. 최근에는 OLED 특허 출원 건수도 중국에 따라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같이 엄중한 상황에서 기존의 특허를 활용해 더 많은 특허를 생산하도록 하는 역할이 절실하다”며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것을 넘어 특허청의 정체성을 바꿔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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