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상법과 상생협력법 개정도 다시 추진할 전망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를 상시화하는 ‘일하는 국회법’까지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들을 21대 국회에서 완수하겠다”고 밝히고 있어서다.
국회가 본연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데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의욕이 넘쳐 과잉·졸속 입법을 남발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과잉·졸속 입법의 폐해는 지금 국회에서도 절감하고 있다. 지난 7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일명 ‘n번방 사건방지 후속법안’(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네이버 카카오 등에 온라인상의 불법 촬영물에 대한 차단·삭제 의무를 부과해 논란이 크다. 인터넷 업계는 “마치 택배기사에게 배달 물건 중 폭탄이 있는지 확인해 폐기하라는 것”이라며 “이 법은 실행 불가능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11일 상임위를 통과한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졸속 입법이란 비판을 받는다. 예술인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이 법은 사업주가 다수일 때의 신고방식 등 핵심 내용을 정하지 않고 시행령으로 넘겨서다. 운전 과실에 비해 처벌이 가혹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일명 ‘민식이법’도 입법 당시 비등한 여론에 편승해 밀어붙였다가 뒤늦게 부작용을 걱정하는 경우다.
과잉·졸속 입법의 배경에는 입법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의원입법 급증이 도사리고 있다. 20년 전인 16대 국회(2000~2004년)만 해도 4년간 2500여 건이었던 국회의원 발의 법안건수가 가파르게 늘어 20대 국회에선 2만 건을 넘었다. 입법 발의건수가 의정활동 평가 잣대처럼 여겨져 의원들 간 경쟁이 붙은 결과다. 정부가 법률안 발의를 의원에게 부탁하는 소위 ‘청탁 입법’도 늘고 있다. 의원입법은 정부 발의 입법과 달리 10일간의 입법예고와 상임위 검토 외에는 별다른 의견수렴 및 검증 절차가 없다. 입법 자체가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세상만사를 모두 법으로 정할 순 없다. 더구나 민간의 자율과 창의가 중요한 시장경제를 법으로 일일이 재단하는 것은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 우리나라 입법의 30% 이상이 규제법안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21대 국회의원들은 입법 발의에 신중해야 한다. 전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또 의원입법안에 대해서도 규제심사를 도입하고, 입법영향분석제도를 신설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차제에 입법 발의건수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관행도 고쳐지길 바란다. 위기 극복을 위해선 의욕만 넘치는 ‘일하는 국회’가 아니라 ‘일 잘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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