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문 열었지만 가동률은 30%
17일(현지시간) 미국 내 자동차 생산공장의 절반 이상이 일제히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업계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2차 감염에 의한 코로나19발(發)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 공포가 여전한 데다 자동차산업이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에 진입했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미국에서 가동을 시작한 자동차 공장은 23곳으로 전체(43곳)의 53.5%다. 미시간·켄터키주 등지에 있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자동차, FCA그룹 공장들이다. 지난주까지는 다임러, BMW, 현대·기아자동차, 도요타자동차 등이 재가동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미국 내 가동 공장은 기존 10곳에서 33곳(76.7%)으로 늘었다. 나머지 공장들도 다음달까지 순차적으로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다.
문제는 저조한 가동률이다. 현재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공장들의 평균 가동률은 30% 안팎에 그친다.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에 근로자들을 모두 복귀시키기 어렵고, 공급망 붕괴로 부품 공급도 여의치 않아서다. 다임러의 미 앨라배마 공장은 지난달 재가동에 들어갔다가 부품 부족으로 이번주 다시 멈춰서기도 했다. GM 관계자는 “완벽한 생산체계를 다시 갖추려면 최소 4주 이상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짐 페얼리 포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생산이 언제 정상화될지 가늠이 안 된다”고 했다.
위축된 시장 수요도 관건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 규모가 작년보다 20%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판매 2위 도요타는 올해 영업이익을 5000억엔으로 잡았다. 작년보다 79.5% 줄어든 수준이다. 판매량은 20% 감소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충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1위 폭스바겐은 올해로 잡아뒀던 미국 내 흑자전환 시기를 연기했다. 리서치업체 LMC오토모티브는 올해 미국 자동차 생산량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900만 대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지난해 생산량은 1088만 대였다.
시장의 판이 바뀐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선 생산시설 감축이 거론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완성차 업체들은 수요 대비 20%를 초과한 설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까지 확 줄어 일부 설비의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수익성이 낮은 소형차 생산 공장이 폐쇄 1순위로 꼽힌다. 유럽에 있는 피아트·르노·폭스바겐 공장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생산 감축은 인력 구조조정과 직결된다. 이 때문에 극심한 노사 분규가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닛산자동차는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2022년까지 글로벌 생산능력을 20% 줄인다는 방침이다. 이에 공장 철수를 반대하는 근로자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생산이 중단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피터 웰스 카디프 경영대학원 자동차산업연구센터 소장은 뉴욕타임스에 “설비 축소 과정에서 많은 노사 분규가 뒤따를 것”이라며 “자동차산업이 경제보다 정치적인 이슈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빨라질 전망이다. 하칸 사무엘손 볼보자동차 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의 디지털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코로나19 이후에도 예전처럼 고객들이 디젤차를 사러 매장에 오길 기대한다면 정말 순진한 생각”이라며 “전동화는 더욱 빨라질 것이며 정부의 자동차업계 지원 정책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을 통해 차를 사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유통 방식에 변화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합종연횡도 큰 변화의 흐름으로 지목된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개발에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손을 잡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7월 폭스바겐과 포드가 자율주행차를 함께 개발하고 전기차 부품을 공유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악셀 슈미트 액센츄어 전무는 “그동안 경쟁자로 여겨져왔던 기업들과도 협력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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